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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박정희가 앗아간 ‘국민 주도 개헌권’이라도 되찾자 / 임석규

등록 2017-12-14 17:34수정 2017-12-14 19:34

임석규
논설위원

대통령 4년 중임제인 미국에선 6년 단임제로 고치려는 개헌이 줄기차게 시도됐다. 1826년부터 150차례 이상 단임제 개헌안이 의회에 제출됐다. 대통령이 차기 선거를 준비하느라 소신껏 국정을 운영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5년 단임제가 문제라며 4년 중임제로 고치자는 우리와 영 딴판이다. 정부형태에 정답은 없다는 걸 보여준다. 나라마다 형편이 다르고 시대마다 국민 요구가 바뀔 뿐이다. 중요한 건 제도가 그 나라, 그 시대와 어울리느냐 여부다.

‘올바른 개헌’은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 오직 ‘합의된 개헌’만 있을 뿐이다. 개헌은 선악이 아니라 선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헌법’도 있을 수 없다. 독일은 우리와 같은 해인 1948년에 만든 헌법을 60여 차례 수정하며 헌법과 현실의 간극을 메워왔다. 미국은 헌법을 15차례 개정했지만 조문 27개만 추가했다. 헌법은 나라 사정에 따라 필요한 만큼 고쳐 쓰면 된다. 우리도 일단 합의할 수 있는 선에서 개헌하고, 필요하면 나중에 또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어떨까 한다. “이걸 못할 바엔 개헌하지 말자”고 하면 개헌 죽어도 못한다. “이건 못해도 이번엔 꼭 개헌을 하자”는 관점이라야 매듭이 풀린다.

12월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2018 개헌추진 국민운동본부’ 준비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12월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2018 개헌추진 국민운동본부’ 준비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합의된 만큼이라도 개헌을 하려면 국회가 언제까지 합의안을 낼지 약속하는 게 필요하다. 그 시기까지 합의된 것만 개헌해도 커다란 진전이다. 지금껏 국회가 주도권을 쥐고 개헌을 해본 역사가 없다. 이번에 국회가 개헌을 해내면 신뢰가 크게 높아질 것이다. 정부형태를 합의하기 어렵다면 어쩔 수 없는 거다. 역량이 거기까지임을 인정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도리 없다.

문제는 따로 있다. 개헌특위는 ‘내년 6월 개헌’을 전제로 가동해왔다. 여야가 합의한 일정이었다. 홍준표 대표는 개헌을 늦추자고 하지만 이게 자유한국당 당론인지 불분명하다. ‘6월 개헌 불가’가 자유한국당 당론으로 확정되면 문제가 간단해진다. 연말로 시한이 종료되는 개헌특위를 더 가동할 필요가 없다. 제1야당이 반대하는 개헌은 불가능하다. 하지도 못할 개헌을 위해 적지 않은 예산 써가며 특위 시한을 연장해서 뭐 하겠는가.

최악은 자유한국당이 ‘연막전술’을 펼 경우다. 개헌특위를 연장한 뒤에 계속 애매한 태도를 취하며 차일피일 논의를 미루다 막판에 ‘합의 불발’을 핑계로 내세워 판을 깨는 거다. 책임을 떠넘기려는 ‘물귀신 작전’이다. 돌멩이를 던져 항아리를 깨트려놓고 옆 사람과 공동책임이라고 우긴다면 말이 되는가. 개헌 뜻이 없다면 한시라도 빨리 밝히는 게 비겁하지 않은 태도다.

대통령도 개헌을 발의할 수 있지만 자유한국당이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고 부결시키면 그걸로 끝이다. 달리 방법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신헌법에서 사라진 ‘개헌 국민발의권’이 아쉽기만 하다. 지금은 국회와 대통령에게만 발의권이 있지만 유신헌법 이전까지는 ‘국회의원 선거권자 50만인 이상’이 뜻을 모으면 개헌안을 낼 수 있었다. 박정희가 유신헌법으로 개정하면서 그 조항을 없애고 국민 주도 개헌의 싹을 제거해버렸던 거다.

‘개헌 국민발의권’은 시민들이 정치에 의미 있게 참여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다. 광장으로 뛰쳐나온 ‘촛불’을 제도화한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박정희가 ‘종신 대통령’으로 군림하기 위해 국민에게서 강탈해간 권한이니 지금이라도 되찾을 때가 됐다. 국회 개헌특위에서도 국민주권 강화 차원에서 이 조항을 부활하자는 의견이 다수였다. 하다못해 이것만 해내도 이번 개헌은 충분히 의미 있다.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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