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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미국은 여전히 우리의 대안인가? / 김남국

등록 2017-12-24 18:07수정 2017-12-24 18:53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공식 선언은 “지옥의 문을 연 결정”이라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경고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협상에서 결정되어야 할 문제”라는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발언에서 볼 수 있듯이 심각한 반대에 부딪혔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이 선언을 거부하는 유엔 총회 결의안이 128개국이 찬성하고 9개국이 반대하는 가운데 채택되었다. 유럽의 대부분 나라를 비롯하여 한국도 결의안 채택에 찬성했다.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오자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공감대를 벗어나 외교적 고립을 자초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국이 다자주의 무대에서 고립을 선택하는 것은 드문 일은 아니다. 혼자 서야 할 때는 언제든지 혼자 선다는 이른바 패권적 일방주의를 드러낸 경우는 유엔해양법협약이나 국제형사재판소, 파리기후변화협약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유엔해양법협약은 미국 주권을 국제법에 맡길 수 없고 해군 작전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미국 의회가 비준을 거부하였고, 국제형사재판소는 해외 작전에 참여한 미군의 기소 가능성과 정치적 악용 우려를 들어 가입을 거부하고 있으며, 파리기후변화협약은 지난 6월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를 선언하여 세계에서 오직 내전 중인 시리아와 고립주의를 선택한 미국 두 나라만이 가입하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은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 때문에 미국 외교정책의 이런 특징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아시아와 미국, 유럽을 세계질서 형성의 3대 축이라고 보면 아시아는 압도적으로 미국 지향의 국제관계 역사를 가져왔고 한국 역시 사활적 동맹으로서 한-미 관계를 주요 축으로 하여 대외관계를 구축해 왔다. 모두가 지구화된 세계를 말하는 현실에서 한국의 상황은 오히려 미국화가 더 심화되었고 차라리 불문학이나 독문학이 번성하던 한국의 1960년대가 더 지구화된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세계질서에 대한 이해에서 우리는 미국의 영향력을 과장되게 인식한 다음 우리의 편향을 강화하는 고정된 세계 이미지를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해 왔다.

최근의 북핵 위기는 북한이 생존 및 정체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존재론적 안보진작 행위를 하고 있고 미국 역시 이 사태를 미국의 안보에 중대한 문제로 이슈화함에 따라 정체성 충돌과 강화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체성의 강화 경쟁에서 북한이 어떤 이유로든 핵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면 이 위기는 군사적 접근만으로 해결 불가능하고 장기적, 규범적 관점에서 다자주의적 접근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국제정치의 주요 행위자로서 유럽연합의 역할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유럽연합은 점증하는 신고립주의 흐름 속에서 국제법에 근거한 다자주의적 접근을 내세우며 국제정치에 적극적인 개입을 천명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균형외교, 실용외교는 한-미 관계와 4강 외교를 기본으로 하되 국익 중심의 외교 다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외교 다변화는 수평적인 외교 지형 확대와 수직적인 외교 층위의 심화를 포함한다. 수평적 확대는 아세안이나 유럽연합 등 새로운 파트너를 발굴해 관계를 강화해 나가는 방법이 있고, 수직적 심화는 도시외교, 국가차원 외교, 지역외교, 다자외교, 정상외교 등으로 개별 국가 중심의 기존 외교를 입체화하는 방식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균형외교의 초점은 우리의 미국 중심 세계질서 인식의 과도한 편향을 조정하는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중요한 동맹이지만 그 절대적 존재감 때문에 우리 외교의 상상력을 제약하는 장벽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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