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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성숙한 청소년, 미숙한 선거제도 / 정용주

등록 2017-12-25 17:44수정 2017-12-25 20:25

정용주
염경초교 교사·<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지금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는 민심을 정확히 반영하는 공정한 선거제도 개혁과 18살로 선거연령을 하향 조정해 참정권을 확대하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 때부터 선거권 연령을 현행 19살 이상에서 18살 이상으로 낮추는 방안을 놓고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선거연령 하향에 찬성하는 이들은 청소년들의 시민으로서 성숙함, 헌법에서 명시한 기본권 보장 등의 이유를 들어 하향 조정에 동의한다. 반면 교육의 정치화, 전교조 교사들의 의식화 교육이라는 이유를 대면서 반대하는 입장도 있다.

찬반 입장을 떠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행위의 의미나 결과를 판단할 인식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합의는 있다. 이것을 어떤 연령 이상이 가졌다고 보느냐, 입장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판단력과 의사능력을 가진 연령이 사회의 변화와 함께 하향화되고 있다.

우리나라 선거연령의 변천을 살펴보면,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연령을 1948년에 21살로 규정했다가 1963년에 20살로 하향 조정했다. 다시 2005년 개정된 공직선거법에서는 19살로 하향 조정하였다. 이러한 추세를 보면, 선거능력을 갖춘 나이에 대한 절대적 기준은 없다. 각 시기의 정치문화, 정치의식, 선거풍토, 교육제도 등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헌법은 선거연령을 헌법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되 시대 변화를 감안해 입법부가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판례는 정신적·신체적 자율성의 불충분과 함께, 교육적 측면에서 예상되는 부작용, 독자적으로 정치적 판단을 할 만한 능력 등을 고려해 선거연령이 정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현실 제도는 이런 면들의 시대적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제한의 이유로 삼아 선거권과 참정권을 제한했다. 그리하여 학생인권은 유린되고, 학생들은 미숙한 존재로 취급당했다.

더 나아가 유신시대에는 미성숙과 정신적 신체적 자율성이라는 논리가 전 연령으로 확대되어, 일부 국민의 선거권 자체가 박탈당했다. 또 각종 긴급조치로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억압됐다. 교사는 사상 통일, 단체 훈련 등을 통해 학생을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주체로 길러내야 했다. 또 공통의 내용을 학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해 국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국민으로 길러내는 데 앞장서야 했다. 나아가 교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각종 관제 시위 및 정치 행사에 학생들을 동원하는 것이었다. 초창기 전교조 교사들은 이러한 학생 동원과 군사교육 반대에 앞장섰던 분들이다.

그러나 판단능력이 미숙한 존재로 취급당한 청소년들은 오히려 역사를 이끌어왔다. 1960년 4·19혁명, 87년 6월항쟁, 지난해 타올랐던 촛불집회의 중심에 청소년이 있었다. 따라서 교육적 부작용, 청소년의 판단 미숙, 의식화 교육을 우려하기 전에 국가의 과오를 반성하는 것이 우선이다. 청소년의 자율성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교사의 교육의 자유를 침해한 역사 말이다. 이렇게 청소년들을 배제한 정치가 과연 얼마나 성숙하고 합리적이었는지 돌아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학교 안에서든 밖에서든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대우받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하며, 우리 모두가 청소년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조속히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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