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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도사 믹스견: 더 크고 더 쫄깃하게

등록 2018-01-11 18:13수정 2018-01-11 19:30

남종영
애니멀피플 팀장

전 세계에는 400여종의 개가 있다. 여우굴에 들어가라고 작게 만든 테리어나 작은 동물을 빨리 추적하라고 만든 하운드가 그렇다. 이런 개들은 국제애견단체가 공인해 품종으로 등록된다. 진돗개가 그중 하나다.

또 하나, 한국에만 사는데 공인되지 않은 품종이 있다. 최소 수십만마리가 사는 걸로 추정되는데, 매년 여름 일제히 죽는다. 그들을 ‘도사 믹스견’이라 부른다.

도사 믹스견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1980~90년대 개농장의 산업화로 시작된 육종의 결과다. 개고기로 쓰였던 누렁이는 맛이 좋은데 덩치가 작아 남는 이문이 적었다. 그래서 일본 도사견을 들여와 누렁이와 교배시켜 고기양을 늘린 것이다. 그렇게 해서 덩치 크고 육질 좋은 품종이 탄생했다. 전국 개농장에 사는 개의 절반 이상이 이 개다.

도사 믹스견은 ‘뜬장’이라고 불리는 철제 구조물에서 평생을 산다. 철제로 얽어놓은 사육 박스로, 바닥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똥오줌이 밑으로 빠져 청소하기 쉬우라고 그렇게 만들었다. 좁은 뜬장에서 처음 나온 개는 걷지 못한다. 태어나서 한번도 걸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도사 믹스견 ‘나라’는 지난해 9월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HSI)이 경기 남양주의 한 개농장에서 구조했다. 기존의 도사 믹스견보다 더 큰 품종과 교배해 껑충하고 덩치가 더 크다.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 제공
도사 믹스견 ‘나라’는 지난해 9월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HSI)이 경기 남양주의 한 개농장에서 구조했다. 기존의 도사 믹스견보다 더 큰 품종과 교배해 껑충하고 덩치가 더 크다.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 제공

이런 사육 환경을 이겨내려면 개는 공격적이지 않으며, 번식력이 강해야 한다. 20~30년 육종의 결과, 도사 믹스견은 최고의 비육견이 됐다. 착하고 온순하며, 모성이 강하고 헌신적이다. 어미는 한번에 8~12마리 이상을 낳는다. 나중에 고기로 팔릴 새끼들은 손가락만한 발이 뜬장 바닥 사이로 빠지기 일쑤지만, 어미는 그런 새끼를 물어다 혀로 핥고 젖을 먹여 키운다.

최근 들어 도사 믹스견이 진화하고 있다. 동물단체 ‘휴메인소사이어티’에서 식용견을 구조하는 김나라 캠페이너가 사진을 하나 보여줬는데, 일반적인 도사 믹스견과 달랐다. 껑충한 몸매인데, 덩치는 되레 커졌다. 그는 “요즈음에는 더 큰 품종인 그레이트데인과 세인트버나드를 도사 믹스에 섞어 골격을 더 크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런 개들은 새끼를 낳다 죽기도 한다고 했다. 뱃속의 새끼가 너무 커서 출산 때 어미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다.

덩치가 큰데도 도사 믹스견은 여름이 되면 비쩍 마른다. 지난여름 동물단체 ‘카라’의 전진경 이사는 개농장 실태 조사를 하면서 굶주리는 개들을 봤다. “출하 며칠 전부터 개들은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더 좋은 육질을 위해 지방분을 빼는 것이다.”

도사 믹스견 ‘나라’는 지난해 9월 구조 직후 8마리 새끼를 낳았다. 그중 6마리가 살아남았다. 나라와 새끼들은 강원 홍천의 보호소에서 지내고 있다. 처음에는 물 마시는 법도 몰랐다고 한다.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 제공
도사 믹스견 ‘나라’는 지난해 9월 구조 직후 8마리 새끼를 낳았다. 그중 6마리가 살아남았다. 나라와 새끼들은 강원 홍천의 보호소에서 지내고 있다. 처음에는 물 마시는 법도 몰랐다고 한다.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 제공

사실 근대사회 인위적 교배로 창조된 대다수 순종견들은 선천적 장애를 갖고 산다. 불도그는 눈꺼풀이 계속 처지면서 앞을 못 본다. 다리가 짧아진 웰시코기는 고질적인 추간판탈출증(디스크)을 앓는다. 우리의 욕망 때문이다. 맛있는 걸 먹고, 귀여운 걸 만지려는 욕망이다.

그래도 세상은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법적으로 돼지에게 가지고 놀 수 있는 물건을 주고(유럽연합), 돌고래 전시·공연을 퇴출하는(프랑스 등) 세상이다. 하지만 동물을 좁은 철장 안에 구겨넣어 더 크고 쫄깃한 고기를 만들려고 고통을 주는 시스템이 정착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생명의식이 어른처럼 성숙하다면, 개농장에서 벌어지는 생명의 인위적 생산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생명들의 고통을 지나쳐선 안 될 것이다.

개고기 먹는 한국인을 야만인처럼 비난한 브리지트 바르도와 손석희의 2001년 인터뷰는 유명한 사건이다. 나는 한일월드컵 직전에 벌어진 그 설전이 개고기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정제된 토론을 크게 후퇴시켰다고 본다. 그 뒤 민족주의 프레임이 압도하면서 다양한 성찰의 기회를 막았다. 지금은 반려동물과 사는 사람이 1천만명이 넘고, 젊은 세대는 개고기를 멀리한다. 다음달이면 평창 겨울올림픽이다. 식용견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공론화할 때가 됐다.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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