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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곡의 똑똑똑] 화병

등록 2018-01-14 20:54수정 2018-01-14 21:00

김곡
영화감독

화병은 불(火)이 뭉친 병이다. 불이 뭉친 이유는 그것이 쉽게 꺼지지 않는 불이고, 쉽게 꺼지지 않는 이유는 그 불이 어디서 발화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길을 걸을 때도 천불이 나고, 사람들과 함께 식사할 때도 천불이 나고, 방 안에 혼자 앉아 있어도 천불이 나고, 심지어 자다가 꿈속에서도 천불이 난다. 화병의 불은 당신이 가는 곳마다 따라붙는다. 왜냐하면 그 불은 당신 속에 있기 때문이다.

도통 꺼지질 않으니, 유일한 자구책은 불을 딴 데로 옮기는 것이다. 화병에 걸린 당신이 길을 가다가 씩씩대며 중얼거리는 “한 놈만 걸려 봐”라는 대사가 이를 잘 설명해준다. 바로 이 때문에 화병에 대응하는 쌍둥이 개념쌍은 다름 아닌 ‘혐오’일 것이다. 화병이 응화(凝火)라면, 혐오는 방화(放火)다. 그런데 여기엔 또 다른 매개변수가 있는 것 같다. 불을 옮겨붙임을 스스로 정당화하기 위해, 불이 옮는 그곳이 곧 발화점이라고 가정하도록 해주는 가상성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흡사 방화범이 아무 데나 불을 지르면서 “너네들 때문이야”라고 망상적으로 가정하는 것과 같다. 실상 화병의 당신이 길을 걷다 중얼거렸던 “한 놈만 걸려 봐”의 ‘한 놈’은 이 세상에 실존하지 않는다. 그 ‘한 놈’은 당신의 머릿속에, 가설적으로만 존재한다. 화병은 혐오로 이어지지만, 그것은 언제나 가상의 적을 매개로 해서만이다. 그런 의미에서 화병은 도깨비불이다. 그 대상이 도깨비와 같은 가상이기 때문이다. 화병은 언제나 가상의 적을 찾는다.

인터넷의 시대에 들어서서 화병이 들불처럼 번져갈 수 있었음은 바로 이 때문이리라. 인터넷은 가설적 공간을 줌으로써, 화병환자들에겐 방화의 기회를 그야말로 무한정 공급한다. 물론 화병은 인터넷이 없던 옛날에도 존재했고, 총량도 비슷했으리라. 그러나 인터넷의 가상공간이 방화의 들판을 펼쳐내자마자 모든 것이 달라진다. 화병의 총량은 그대로일지라도 그 확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기실 인터넷 공간에서 우린 익명의 아이디(ID) 뒤로 숨고 스스로 가상적 캐릭터로 탈바꿈함으로써, 서로가 서로에 대해 가상의 적이 되는 최적의 조건 속에 있다. 인터넷의 가상공간이야말로 가상의 적들이 자라나는 최고의 인큐베이터인 셈이다. 이것이 화병에 관해서라면 인터넷이 선만이 아니라 악인 이유다. 누가 인터넷이 화병의 소화기라 했나. 그 가상성에 의해 인터넷은 화병을 말 그대로 비화(飛火)시킨다. 인터넷은 화병의 불 지핌 공간이다.

화병의 말기에 겪게 되는 고통은, 고로 해리증상인 것 같다. 불길에 의해 실재의 적과 가상의 적이 분열되는 만큼, 화병환자 자신도 실재자아와 가상자아로 분열되기 때문이다. 여기엔 어떤 악순환이 있다. 화병이 해리를 낳고, 해리는 다시 화병을 키운다. 자아의 해리된 간극은 화병 비화의 뇌관이 되고, 반대로 비화는 다시 해리의 화약이 되는 악순환. 바로 이것이 우리가 화병의 최종 단계에서 보게 되는 혐오가 과대망상증에 가까운 이유다.

일베는 대통령 모가지를 쳐낼 참수부대원을 모집한다. 워마드는 제천 화재를 여성 학살로 규정한다. 그들은 가상의 적을 만들어내기 위해, 스스로 현실로부터 해리되고 있다. 그들은 화병환자들이기 때문이다. 먼저 구제되어야 할 것은 혐오가 아니라, 화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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