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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월급 도둑 / 박점규

등록 2018-01-22 18:32수정 2018-01-22 19:06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경기도 ㅂ병원 간호사가 편지를 보냈다. 그는 기본급, 교통·급식·직급·체력 수당, 상여금을 받고 있었다. 상여금 800%는 16분할해 매달 50%를 받고, 설, 추석, 6월, 12월에 50%를 추가로 받았다. 새해가 되자마자 병원은 상여금 700%를 기본급에 포함시켰고, 설과 추석에만 50%씩 지급하겠다며 직원들에게 서명을 받았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꼼수인데, 좋은 거라고 이야기하는 인사팀장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튿날에는 다른 간호사가 제보를 했다. 그의 기본급은 2018년 최저임금 월 157만원보다 적은 130만원이었다. 상여금을 기본급에 집어넣자, 기본급이 200만원이 됐다. 그런데 각종 수당을 더한 월급 총액은 10만원 오른 250만원이었다. 지난해보다 최저임금이 22만원 인상됐으니, 이 병원 간호사는 12만원을 도둑맞은 꼴이다. 그는 “어차피 사인하지 않아도 3월엔 시행할 수 있으며, 범법 행위는 아니라고 한다”며 “이게 올바른 최저임금 계산인가요?”라고 물었다.

직장갑질119(gabjil119.com)에 3주 동안 200여건의 최저임금 신고가 쏟아졌다. 이 중 전자우편 제보 77건을 분석했더니 상여금 축소가 35건(45%)으로 가장 많았고, 식대 등 수당 폐지(16건)와 휴게시간 확대(15건)가 뒤를 이었다. 보수언론이 ‘최저임금의 역설’이라며 방정을 떨던 해고는 딱 한 건이었다.

1월8일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 인상에 불법·편법적으로 대응하는 사업주들 행위를 시정하도록 하겠다”며 편법적 사례로 ①동의 없는 상여금 삭감 ②휴게시간 추가 ③복리후생적 임금 폐지 ④상여금 월할로 변경 ⑤인건비 절감을 위한 해고 등을 제시했다.

그런데 ㅂ병원은 왜 범법 행위가 아니라고 했을까? 취업규칙에 규정하도록 한 임금 체계를 바꾸려면 과반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민주노조가 있으면 쉽지 않겠지만, 노조 없는 회사에서 ‘취업규칙 나쁘게 바꾸기’는 식은 죽 먹기다. 사인을 안 했더니 근로계약서를 계속 가져왔다는 제보도 있었다. 간 큰 직장인이 아니라면 서명을 거부하기 힘들다. 노동부는 과반수에만 관심을 둘 뿐 강요 여부는 따지지 않는다. 최저임금 도둑질이 판치는 이유다.

범죄를 방치한 건 정부다. 지난해 7월 최저임금이 결정된 후 5개월 동안 정부는 ‘대폭 인상’에 취해 있었다. 언론 광고를 통해 상여금과 복리후생수당을 최저임금에 넣는 행위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2016년 노동부는 노동4법 홍보비로 63억원을 사용했다. 사업주를 위한 광고엔 돈을 펑펑 썼고, 노동자를 위한 홍보는 관심 밖이었다.

최저임금 시행 닷새 전인 12월26일 최저임금위원회 전문가 티에프는 “산정 주기와 관련 없이 1개월 단위로 지급되는 상여금을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넣자”는 것을 ‘다수의견’으로 냈다. 재계는 “진일보한 안”이라며 반겼고, 노동계는 “저임금 노동자의 희망을 짓밟는 개악 권고안”이라고 반발했다. 최저임금 적용을 코앞에 두고 정부기관이 사장들에게 편법을 알려준 셈이다. 경찰관이 유흥업소 단속을 피하는 수법을 알려주고, 소방관이 화재 점검에 걸리지 않는 비법을 찔러주는 것과 뭐가 다른가?

종합병원, 유명 프랜차이즈, 대기업과 공공기관 협력업체까지 최저임금 신고가 끊이질 않는다. 돈 잘 버는 기업들이 최저임금 도둑질을 일삼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월급 도둑의 뒤를 봐주는 게 아니라면, ㅂ병원 간호사는 빼앗긴 상여금 700%를 돌려받을 수 있지 않을까? 노동부의 대답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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