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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삼성 물건을 사지 않겠다 / 박진

등록 2018-02-12 18:35수정 2018-02-12 18:58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삼성 이재용을 풀어준 정형식 판사에 대한 분노가 청와대 청원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런데, 그런데… 무수한 이야기들의 한복판에 있는 이재용과 이씨 일가에 대해서는 어떤가. 이재용이 석방되던 날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제외한 모든 신문은 일제히 ‘심쿵’한 사설들을 쏟아냈다.

“이재용 사건, 피해자를 범죄자 만든 것 아닌가”(<조선일보>) “삼성은 심기일전해서 글로벌 정도 경영에 매진하길”(<매일경제>)… “이재용 이제는 앞만 보고 뛰어라”(<서울경제>). 정말 최고다. 후렴구를 반복하는 변주로 수 시간 동안 긴 세레나데를 직접 작곡하기도 한다는 혹등고래 수컷의 구애를 보는 듯했다.

언론의 구애는 구체적 광고비와 인적 네트워크 아래 이뤄진 정략적 치정으로 치자. 언론의 작전이 여론을 형성한 것일까. 정형식 판사와 사법부에 대한 분노는 모아지는데 해시태그 운동 ‘#그런데_이재용은’ 없다. 별로 보이지 않는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은 강남역 삼성 본관 앞에서 861일째 농성 중이다. 지난 토요일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이재용 항소심 강력규탄의 집회가 열렸지만, 평창 올림픽 덕분인지 설 연휴를 앞둔 덕분인지(특별 시즌을 코앞에 두고 항소심 선고가 난 것도 삼성의 권능일까) 불이 붙지 않는다. 항소심 재판 전 이재용에 대해 제대로 된 재판을 탄원하는 서명운동도 했지만 관심이 높지 않았다. 여론을 실낱같이 파악한 심복과 조력자들 덕에 이재용은 미소 지으며 출소했다. 이재용이 이겼다.

재벌들을 용서하는 이유는 유사했다. 범죄랑 상관없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고려되었다. 심지어 판결문에도 적시되곤 했다. 그러나 그들이 있은 덕에 ‘국가경제’가 지금처럼 나빠진 건 아닐까. 부모세대보다 최초로 가난한 세대라는 젊은 세대의 절망과 빈곤은 빈부 격차를 있는 대로 벌려 놓은 저들의 이간질 때문이 아닌가. ‘열심히 살아서 우리처럼 되면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법이 도와준다’는 강력한 메시지 말이다.

부모 잘 만난 것 말고는 열심히 살아낸 흔적도 없는 자들의 부귀영화를 중단시켜야 한다. 그건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라기보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그야말로 열심히 살면 살 궁리가 생길 사회 같은 것이 만들어지려면 질서가 바로잡혀야 하지 않겠는가. 질서라는 것은 우리가 다 아는 대로 ‘죄를 지으면 죗값을 치르는 것’에서 시작한다. 투명하고 민주적인 사회는 부패하고 억압적인 사회보다 삶의 질이 높다.

생각하다, 운동 중에 가장 어렵다는 불매운동을 생각해냈다. 용서하지 않는 자의 용기를 보여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삼성 물건을 사지 않겠다.” 가족과 동료와 친구들에게 적극적으로 권유할 것이다. 이재용과 이씨 일가가 삼성을 지배하는 한 그 회사의 물건을 사지 않겠다. 불편함을 감수해야겠지만 괜찮다. 불편함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백인 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버스 운전사의 지시를 거부하고 경찰에 체포된 로자 파크스와 이후 382일 동안 계속된 흑인 시민들의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은 남북전쟁 이후 백년까지 인종 차별을 정당화했던 ‘짐 크로 법’ 폐지를 앞당겼다. 가깝게 우리는 촛불로 부패한 최고 권력을 끌어내렸다. 일상의 촛불은 이렇게 시작될 것이다. 광장에서만 드는 게 촛불이 아닐 테니…. 바다를 이루는 한 방울은 하찮지만, 한 방울들이 없으면 바다도 없다. ‘#그래서_삼성불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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