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통일부 장관·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대북 특사가 미국이 대화에 나설 수준의 조건부 비핵화 언명을 북한으로부터 끌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대북 특사 파견은 거의 확정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김여정 특사의 방남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답례 형식의 대북 특사를 파견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김여정 북한 특사 간의 대화 불발에 대해 말이 무성하다. 평창 이후 북핵 문제의 진전을 바라는 많은 이들이 이 대화 불발을 아쉬워하며, 올림픽 폐막식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은 미국 대표단과 북한 대표단 간 또 다른 북-미 대화를 기대하기도 한다. 고약스러울지 모르나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펜스-김여정 대화가 실현되었다면 무엇이 달라지지?” 북-미 대화란 ‘북핵 문제의 진전’을 상징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펜스와 김여정이 만났다면 북핵 문제를 진전시켰을까? 핵무기 보유를 완강하게 고집하는 북한과 최대의 대북압박 기조에서 한 치도 물러설 용의가 없는 미국이 이 대치 상황을 변화시킬 새로운 아이디어도 없이 마주해서 어떤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까? 더욱이 펜스 부통령의 방한 행보에서 보았듯이 북·미 양국의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적의는 극에 달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화는 하나마나하거나 안 하느니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사실 평창 올림픽을 통해 기대한 북-미 대화는 공개적인 행사장에서 양국의 인사들이 자연스럽게 만남으로써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정도였다. 이런 곳에서는 상대방에 대해 드러내놓고 적의를 표현하기 어렵고 가식적이라도 덕담이나 점잖은 말을 하게 마련이다. 종종 형식이 내용에 영향을 미치듯이 이 이벤트가 대화 환경을 성숙시킬 수 있다. 결국 북핵 문제를 진전시키는 내실 있는 북-미 대화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형성된 제한적인 대화 국면을 북-미 대화로까지 확장시키려던 한국 정부의 구상은 실패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평창 올림픽을 통해 이후 북-미 대화 중재를 포함한 평화 구상을 안정적으로 추진해나갈 발판을 마련했다. 대북 특사 카드가 그것이다. 대북 특사는 북-미 대화를 성사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현 상황에서 생산적인 북-미 대화가 가능하려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일은 북한의 핵 보유 의지가 완강해서 실현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접근 방법을 바꾸어 중재자가 나서서 김정은으로부터 조건부 비핵화 의지를 이끌어내는 일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김정은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핵무기를 개발했지만 그 과정에서 핵 보유를 추구하는 한 국제 압박과 빈곤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체험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이미 국내적으로 핵무기에 의존하지 않아도 통치가 가능할 정도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했기 때문에 북한체제 안전보장이라는 조건만 충족된다면 비핵화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여기서 대북 특사가 미국이 대화에 나설 수준의 조건부 비핵화 언명을 북한으로부터 끌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대북 특사 파견은 거의 확정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김여정 특사의 방남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답례 형식의 대북 특사를 파견할 수 있게 되었다. 김여정은 문 대통령을 면담하고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안을 전달하였다. 그는 3시간 가까이 문 대통령과 대화했으며 4차례에 걸쳐서 자리를 함께하며 교류하였다. 이 이벤트가 문재인 정부에 특사를 통한 북한 설득이라는 통로를 제공하였다. 앞으로 문 대통령이 파견하는 특사는 그가 분망한 올림픽 행사 기간에 김여정에게 내준 긴 면담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김정은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것이다.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북핵 문제와 북-미 관계 등이 대화와 설득의 주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김정은은 2011년 12월 집권한 이래 7년 동안 외국 정상과 한차례 회담도 치르지 않았다. 중국·러시아 등에서 파견한 특사를 만나기는 있으나 그들과도 장시간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이 말은 문 대통령의 특사가 김정은에게 남한의 시각과 미국의 입장, 국제사회의 동향을 소상히 전달하고 또 그의 의중을 들으며 북핵 문제 관련 조율도 시도하는 최초의 인물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대북 특사의 의미가 크다. 또한 대북 특사는 김정은에게 “북과 남은 정세를 격화시키는 일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는 신년사를 상기시키며 북-미 대화의 전제이기도 한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시험발사의 지속 중단을 요청하여 긍정적인 답변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처럼 대북 특사는 평창 이후 한반도 정세를 관리할 중요한 수단이기에 너무 늦지 않게 3월 중에 파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수차례 파견하여 위기 국면을 관리하는 중요 기제로 활용해야 한다.
연재이종석 칼럼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