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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골프채

등록 2018-03-07 18:24수정 2018-03-07 19:42

전우용
역사학자

오늘날 한국의 젊은이들은 금수저와 흙수저로 나뉘고, 노인들은 ‘치는 노인’과 ‘줍는 늙은이’로 나뉜다고들 한다. 치는 것은 골프공이요, 줍는 것은 폐지다. 한국에서 골프는 스포츠 그 이상이다. 한국의 옛날 귀족들은 풍광 좋은 곳에 모여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며 악공의 음률과 기생의 가무를 즐기면서 놀았으나, 현대의 귀족들은 풍광 좋은 곳에 모여 골프를 치면서 논다.

골프는 15세기 중엽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되었다. 땀 흘리지 않고 환담하며 즐길 수 있었기에, 처음부터 귀족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1900년, 원산 해관(海關)에 고빙된 영국인들이 해관 구내에 6홀 규모의 코스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장이다. 이 골프장은 일본인들이 해관 운영권을 장악한 뒤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이 땅에 골프장이 다시 생긴 것은 3·1운동 나던 1919년 가을이었다. 이해 5월,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서울 효창원에 9홀 규모의 골프장 건설에 착수하여 9월에 완공했다. 구미인 관광객 유치가 목적이었기에 운영은 조선호텔이 맡았다. 1921년, 구미인 40여 명에 7~8명의 일본인과 조선인을 더해 경성골프구락부가 결성되었는데, 이들 중 조선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1925년께 한국인으로서 골프 잘 친다는 소리를 들은 사람은 영친왕 이은(李垠)뿐이었다.

1924년에는 청량리에 새 골프장이 생겼고, 1929년에는 군자리에 18홀 규모의 골프장이 개장했다. 이 무렵부터 ‘사치인지 오락인지 운동인지’를 분간할 수 없는 골프에 열중하는 한국인 부호들이 부쩍 늘어났다. 1930년대 초에는 서울에만 네 곳의 ‘베이비골프장(=골프연습장)’이 생길 정도였다. 1919년 효창원 골프장을 설계한 미국인 댄트는 “골프 운동은 재미가 많아서 한 번 시작을 하면 아편에 인 박인 듯이 계집에 반하듯이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에 걸쳐 전국에 수많은 골프장이 신설되어 자연림을 잔디밭으로 바꿔 놓았다. 현대의 귀족과 귀족 흉내 내려는 사람과 그들에게 연줄을 대려는 사람들이 골프장으로 몰려들었다. ‘귀족놀음’의 속성이 본래 그렇지만, 특히 한국의 아마추어 골프는 사회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은밀한 권력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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