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마 선언이 한창이다. 군수나 시장을 하겠다는 마당에 공약이 빠질 수 없다. 그 약속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선거용일망정 지금 한국 사람의 기쁨과 고통, 좌절과 희망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특히 비수도권 군(郡) 지역에 넘쳐나는 병원 공약이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군립병원’을 세우거나 ‘종합병원’을 유치한다는 데가 여러 곳이다. 수요가 폭발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많은 ‘지방’에 병원다운 병원, 갈 만한 의료기관이 없는 모양이다. 종합병원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각 군이 내놓은 통계가 현실을 웅변한다. 전북 임실 한 개 병원 103개 병상, 경북 봉화 한 개 병원 128병상, 충남 청양 두 개 병원 128병상. 종합병원에 갈 만큼 아프면 어쩌나, 응급 환자가 생기면 어떻게 해결할까, 아슬아슬하다. 더 심한 곳도 있으니 강원도 화천 같은 곳은 한참 전부터 의원 몇 개가 전부고 병원은 없다. 병원을 (더) 가지겠다는 공약은 지금 지역 전체가 나선 생존 투쟁일지도 모른다. 비수도권, 농촌, 군에서 의료가 붕괴하는 이유는 누구나 짐작하는 그대로다.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의원, 병원, 요양병원, 정신병원은 소멸해가는 지역에서 버틸 재간이 없다. 인구 규모와 경제성이 줄면, 채산을 맞출 수 있도록 시장이 작동하지 않는다. 효율성과 질을 높여 경쟁력을 키운다는 식의 시장형 ‘정공법’이 통할 리 만무하다. 1월 말 발생한 밀양의 병원 화재는 지방 의료의 왜곡된 생존 전략이 파탄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 마땅한 답이 없으니 답답하다. <지방도시 살생부>를 쓴 마강래는 지역의 ‘압축’과 ‘스마트 축소’가 해결책이며 지역에 맞는 일자리가 그 토대라 주장한다. 매혹적인 전략으로 검토해야 하지만, 한 층만 더 들어가면 금방 생각이 막힌다. ‘압축도시’가 올바른 방향이라고 치고, 그러면 일자리는 어떻게 만드나? 사람이 살 만해야 공장도 들어오고 직원도 구할 수 있을 터, 병원도 없고 학교도 없으면 무슨 수로 사람을 끌어들일까. 출발부터 다시 제자리걸음이다. 국가와 공공만이 삶터(시장이라 불러도 좋다)가 될 만한 토대를 (다시) 만들 수 있다. 군립병원 공약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민간에서 종합병원을 유치한다는 약속은, 알고도 그랬다면 잘못 짚었다. 시장이 없어지는 마당에, 진입할 매력이 없는 곳에, 무슨 수로 병원 ‘사업자’를 끌어들인단 말인가? 군립병원은 정부가 직접 하겠다는 것이니 정책과 재정의 책임이 분명하다. 선례도 있다. 인구 5만인 경북 울진군에 의료원이 생긴 지는 오래고, 주민 2만이 좀 넘는 전북 진안군도 2015년부터 군립 공공병원을 운영한다. 지역 살리기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그곳에 사는 사람도 최소한의 품위 있는 의료를 누릴 권리가 있다. 한둘 병원만으로는 삶의 질과 건강권을 보장하기에 역부족이다. 혼자서 거동이 어려운 노인과 응급의료와 몇 없는 분만과 치매를 같이 생각해보자. 군립이나 시립병원 한 개가 아니라 온 지역을 짊어지는 ‘공공 시스템’이 필요하다. 결정에 힘을 미칠 만한 사람들은 (또!) 돈이 없다 하겠지만, 핑계를 찾을 여유가 없다. 재정 여력이니 복지 부담이니 하는 것은 모두 한가한 소리, 의료만이 아니라 사회가 무너져 내리려는 판이다. 발상을 바꾸어 공공이 주류가 되고 민간이 보조 역할을 하는 패러다임을 택해야 한다. 습관을 벗고 상식을 의심하며 상상의 경계를 뚫고 나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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