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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오리지널 공화국’ 중국의 오늘 / 이본영

등록 2018-03-27 18:29수정 2018-03-27 19:06

이본영
국제뉴스팀장

자금성 태화전에는 아득한 천장에 커다란 공 모양의 물체 헌원경이 달려 있다. 헌원은 중국 고대 설화 속 통치자로 황제라는 보통명사의 시조인 황제의 본명이다. 천자가 아닌 자가 옥좌에 앉으면 이 원구가 떨어져 죽인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전설을 더 흥미롭게 만든 인물이 위안스카이다. 청조 말 총리대신이었던 그는 공화혁명에 편승해 쑨원한테 임시 대총통 자리를 양보받았다. 내친김에 1916년 공화국을 폐지하고 황제에 오르려 했다. 즉각 대대적 봉기가 발생하자 제위를 포기하고 그 직후 요독증으로 죽었다. 원래 태화전 원구는 옥좌 바로 위에 있었단다. 위안스카이가 이게 자기 머리에 떨어질까봐 옥좌를 뒤로 옮겼다는 게 또 다른 전설이다. ‘사기꾼 열전’의 첫 장에 기록될 만한 이 인물은 역사의 강물을 거슬러 오르다 배가 뒤집혀 익사했다. 중국 공산당이 국가주석 연임 제한을 폐지하면서 ‘위안스카이’를 인터넷 금칙어로 삼은 맥락은 이렇다.

흥미로운 얘기일수록 복사판과 속편이 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는 위안스카이에 쉽게 비유된다. 나폴레옹의 조카인 그는 프랑스 제2공화국 대통령이었다. 욕심을 가누지 못해 큰아버지가 이미 한 번 붕괴시킨 공화정을 다시 무너뜨리고 황제가 됐다. 영광의 재현에 몰두하다 1870년 프로이센과의 싸움에서 포로로 잡혀 프랑스 제정의 한심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카를 마르크스가 역사의 반복은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희극으로 끝난다며 비웃은 그 인물이다.

시진핑도 속편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두 거대 육상제국 중국과 러시아는 혁명 후 전제 권력자들의 시대를 거쳐 최고 지도자의 임기 제한이나 국민투표를 통한 선출이라는 진보를 이뤄냈다. 시진핑은 지금 공화정을 일거에 위기에 빠트렸다. 중국 공산당은 서구 민주주의는 자국에 맞지 않는다고 선전한다. 당면한 목표들을 이루려면 강력한 지도력이 필수란다. 독재자들의 영원한 이데올로기인 ‘거국일치 사상’이다.

권력은 마약이라서 확실한 제도적 강제가 없으면 끊기 어렵다. “공화제는 가장 좋은 체제”, “다시는 군주정이 행해지지 않게 하겠다”던 위안스카이도 민주공화제는 중국에 맞지 않는다는 말에 솔깃해 자멸의 길로 들어섰다. 다른 해법은 통치자가 관에 눕는 것뿐이다. 중국 공산당은 임기 제한 철폐가 영구 집권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최근 4선에 성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내가 100살이 될 때까지 이 자리에 있을 것 같냐”고 했다. 시진핑이 5년 뒤 연임하지 않거나, 1회 추가 연임에 그친다면 자의보다는 통치 실패나 중국인들의 압력 때문일 것이다.

자신들의 과거에 참고할 만한 게 수두룩한 중국인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서구의 리퍼블릭(republic)에 상응하는 공화(共和)라는 말의 원조는 중국이라는 점이다. 기원전 841년 주의 려왕이 폭정을 일삼다 반란에 직면해 달아나자 두 신하가 정치를 대신한 것을 공화라 불렀다고 <사기>에 나온다. 14년의 짧은 기간이었고 근대적 의미의 공화정과 거리가 멀지만 아무튼 로마 공화정보다 300여년 앞선다.

시진핑이 끝내 권력을 놓지 않고 뒤로도 그런 독재가 이어진다면 그는 로마의 카이사르나 그 양아들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처럼 공화정의 숨통을 끊은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위안스카이나 나폴레옹 3세의 길을 가든 카이사르의 뒤를 따르든 중국 인민들이나 주변국들에 불행한 일이다. 권력의 약 기운을 지속시켜주는 것은 끝없는 복종 요구밖에 없다. 이대로라면 언젠가 시진핑도 한바탕 희극의 주인공으로 기록될 공산이 있다.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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