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매년 되풀이되는 입시전쟁을 볼 때마다 전광판에 숫자들이 번쩍이는 주식시장을 떠올린다. 수험생과 학부모는 우량주를 사려는 매수인이고, 대학은 학과라는 주식을 비싸게 팔려는 매도인이다. 매수인은 여러 개의 주식을 선택할 수는 있으나 안타깝게도 하나밖에 살 수 없다.
주식시장이 경매를 기본 원리로 하듯이 수험생들은 ‘경매형 입시’를 치른다. 수험생의 가장 중요한 밑천은 많은 시간과 돈과 고행으로 얻은 수능 성적이다. 주식시장처럼, 경쟁자들이 얼마나 많은 밑천을 갖고 있고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각종 브로커와 설이 난무하는 것도 비슷하다.
1년에 한번 서는 입시 장은 주식시장보다 훨씬 긴장도가 높다. 부작용과 낭비도 심하다. 이유는 무엇보다 한두 차례의 시험 결과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데 있다. 이는 결과 못잖게 과정에 비중을 두는 교육의 본래 성격에도 정면으로 어긋난다. 점수로 모든 것을 서열화한다는 점에서 비인간적이기도 하다.
대안은 이미 있다. ‘저축형 입시’가 그것이다. ‘저축’은 오랜 시간에 걸친 수험생의 각종 성취를 말한다. 그 저축을 잘 키우고 활용할 수 있도록 적절한 대학과 학과를 찾아주는 것이 저축형 입시다. 거의 모든 선진국이 시행하는 내신 위주 전형이 여기에 가깝다. 경매형 입시에서 대학이 상인으로 나서는 것과는 달리, 저축형에서는 대학이 안내자 겸 인큐베이터 구실을 한다.
입시지옥이란 말이 생긴 지가 오래다. 진부해진 표현이지만, 그렇다고 끔찍한 내용이 달라진 건 아니다. 10대 후반 청소년 대부분이 지옥을 참아내야 한다는 건 국가적인 책임 방기다. 이들의 눈물겨운 고행을 행복으로 바꿔줘야 한다. 일상적인 모든 성취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교육체제를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의미 있는 일을 추구하는 과정에 동반하는 법이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