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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곡의 똑똑똑] 통 크더라

등록 2018-04-29 20:31수정 2018-04-29 20:47

김곡
영화감독

‘통 크게’라니. 이런 어휘가 국가 간 정상회담장에서 나올 줄은 몰랐다. 누구는 북한식 표현이라길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뒤져보니, 정말 ‘속통이 크다’가 북한말로 나와 있다. 그러나 인터넷이나 지면들을 또 돌아보면 ‘통 크게’라는 말은 남한에서도 넉넉히 쓰니, 에라, ‘통 크게’는 조선사람이면 다 쓰는 어휘라고 해두자.

많은 통이 있을 것이다. 물통, 쌀통, 몸통, 족통, 화통, 산통, 빈통, 깡통, 꼴통…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숨통이다. 물통과 쌀통은 3일까진 견딜 만하나 숨통은 3분만 비어도 치명적이다. 몸통과 족통은 숨통 없이는 한 치도 못 움직일 것이며, 화통과 산통은 숨통이 내어주는 공기의 진동 없이는 어찌 삶고 흔들 수 있을는지. 심지어 빈통, 깡통, 꼴통 삼형제도 숨통만은 고귀할진대.

돌아보면 지난 10년 동안 한국 정치사는 그야말로 숨통의 쥐락펴락이었지 싶다. 하루아침엔 숨통을 옥죄기도 하고 하룻저녁엔 숨통을 풀어놓기도 하는, 그 종잡을 수 없이 변화무쌍하고 변덕스러운 펌프질을, 과연 어느 국적의 숨통이 따라올 수 있으랴. 크게 세 장면이 있었던 것 같다.

첫번째는 단연 명박산성. 먹거리 주권을 외치는 성난 군중을 컨테이너로 막아놓았던, 그리하여 광화문 한복판을 흡사 거대한 초현실주의 화폭처럼 승화시켰던 그 차폐벽 말이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하다고 했나. 전문정치인이 아니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광우병 파동에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지 않으려던 이후의 정책들은, 꼭 저 컨테이너 차폐벽을 군중 사이사이에 끼워 넣는 식이었음을 우린 잘 기억한다. 말 그대로 숨통을 끊음이다.

두번째 장면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분향소 방문 장면. 이번엔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유가족의 아우성을 지워버리기 위해, 영정사진들 앞을 지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망원 원샷(영화에서 고독감을 표현하기 위해 많이 쓰는)에서 사운드를 지워버렸다. 결과물은 그야말로 <그래비티>의 한 장면. 바깥세상이 모두 지워져 버린 그 프레임 안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흡사 무중력 상태의 진공을 부유하는 유령처럼 보였다. 명박산성이 차폐벽이고 더하기라면, 근혜우주는 진공이고 빼기의 방법론이다. 전자가 건축적·토목적이라면, 후자는 기체역학적·항공우주적이다. 이 둘의 숨통자르기법은 이렇게나 다르다.

세번째 장면은 그저께 우리가, 또 전세계가 보았던 그 도보다리 30분이다. 취재진과 수행원들을 모두 물리친 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도보다리 산책로를 걷는 장면. 그 둘만의 시간을 위해 멀찌감치 물러난 시선의 거리는 차폐벽이나 동시에 개방하는 벽이고, 그 둘만의 이야기를 위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공기의 두께는 진공이나 동시에 채워지는 공간이었으니. 벽을 세우고 소리를 지우고도 숨통을 끊기는커녕 숨통을 탁 틔우는 저 위대한 한 장면에 무릎도 탁.

난 민족주의자도, 문빠도 아니나, 저 한 장면에 깨달음은, 숨통이 그리 중요한 이유란, 숨이야말로 잠깐만 잃어버려도 죽는 것, 그래서 잃어버리기 전엔 그 존재가 티도 잘 안 나는 소중한 가치임에. 그게 민주주의, 정의, 연대, 뭐든지 간에. 숨통은 울림통일 수도 있음에. 숨통 탁. 무릎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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