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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평양냉면

등록 2018-05-02 18:43수정 2018-05-02 21:30

전우용
역사학자

평양냉면, 춘천닭갈비, 충무김밥, 부산밀면, 언양불고기, 담양떡갈비… 오늘날 한국 음식의 다양성을 구성하는 향토음식들이다. 하지만 한국 음식문화의 유구한 역사에 비추어 보자면, 각 음식의 역사는 ‘일천(日淺)하다’는 말을 쓰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짧다. 대다수 향토음식은 6·25전쟁 중이거나 직후, 심지어 1980년대 말에야 개발되었다. 앞에 지명을 붙이는 음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평양냉면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수를 먹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부터로 추정되는데, 냉면에 관한 기록은 조선 후기에야 처음 나온다. 17세기 사람 장유는 ‘자장냉면’(紫漿冷麵). 즉 ‘자주색 육수에 만 냉면’이라는 시를 남겼다. ‘자주색 장국 노을빛으로 비치니/ 옥가루 같은 눈꽃이 흩어지누나/ 입안에 젓가락을 넣으니 이에 향기가 도네/ 찬기운 몸에 돌아 옷을 껴입었네.’(紫漿霞色映 玉紛雪花勻 入箸香生齒 添衣冷徹身) 1849년에 간행된 <동국세시기>는 ‘겨울철에 무, 배추, 동치미 국물에 메밀국수를 말고 돼지고기를 얹은 것을 냉면이라 한다. 냉면은 겨울 계절음식으로 평안도가 으뜸’이라고 기록했다.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궁중 잔짓상에도 냉면이 오르곤 했다.

메밀이 잘 되고 겨울이 긴 평안도 사람들이 즐겨 먹었기에, 냉면에는 차츰 ‘향토색’이 배어들었다. 냉면이 여름 음식으로 탈바꿈한 것은 냉장고 덕이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장에서 첫선을 보인 냉장고는 곧 대한제국 궁중에 들어왔고, 그 덕에 고종은 여름에도 냉면을 먹을 수 있었다. 1920년대에는 서울 도처에 평양냉면 파는 음식점들이 생겼다. 그래도 서울에서 파는 평양냉면은 ‘국수가 좋고 고기가 많고 양념을 잘하는’ 본고장 냉면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이 중평이었다.

평양냉면이 유명해지자, 조미료 회사인 아지노모토사는 냉면집 주인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판촉 활동을 벌였다. 그 탓에 냉면 맛도 변했고 한국인의 입맛도 변했다. 남한에 평양냉면 파는 집이 급증한 것은 6·25전쟁 후 월남민들에 의해서다. 그 뒤 65년, 서울의 평양냉면과 평양의 평양냉면은 사뭇 ‘다른 음식’이 되었다. 그럼에도, 평양냉면은 서울과 평양이 한 나라의 두 도시일 뿐임을 감각으로 알려주는 기호(記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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