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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정상국가의 여자들 / 이라영

등록 2018-05-09 17:56수정 2018-05-09 23:20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가 4월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 대화하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가 4월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 대화하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남북 정상의 만남으로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여행과 음식처럼 일상을 파고드는 담론도 활발하다. 기분 좋은 떠들썩함이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정상국가로 향한다고 한다. 정상국가의 개념, 즉 정상국가는 결국 어떤 권력의 인정이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은 잠시 삼킨다. 현실적으로는 국제사회에서 정상적인 외교와 무역을 할 수 있을 때 이를 정상국가로 본다. 국제 외교에서 고립되고 무역제재를 받는 북한의 입장에서 정상국가화는 바람직한 변화이며 남한 입장에서도 물론 반가운 변화다.

김정일은 ‘국방위원장’이었으나 현재 김정은은 ‘국무위원장’이다. 선군정치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디어가 보여주는 북한의 유연하고 개방적인 모습은 그간 쌓인 북한에 대한 편견을 깨는 데 일조한다. 다만 이 정상국가 속에서 여성의 자리는 어디인가. 이 질문이 떠나지 않는다.

종종 권위주의적 체제의 집권자들이 국제무대에서 개방되고 세련된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부인들을 적극 활용하곤 한다. 이미지든 실제든 독재국가가 정상국가로 변화를 꾀하는 한 방편으로 배우자의 역할을 강조한다. 2013년 중국의 펑리위안은 중국 퍼스트레이디로는 처음으로 해외 순방에 동행했다. 펑리위안이 패셔니스타 중국 퍼스트레이디의 이미지를 국제적으로 만들어가는 시기에 시진핑의 1인 독재 체제도 완성되었다.

리설주의 등장은 정상국가로 발돋움하려는 북한의 대표적인 변화로 읽히고 있다. 어느 정도 동의한다. 현재의 ‘정상’ 범주 안에서는 맞는 말이다. 정상국가는 곧 정상가족, 정상적인 성애의 확장판이기 때문이다. 이전 북한 지도자들의 아내들은 베일에 가려 있었으나 김정은의 배우자 리설주는 ‘국가 지도자의 아내’로 자리매김했다. 리설주 동지는 리설주 여사가 되었고, “존경하는 리설주 여사”로 북한 매체에서 언급되기도 했다.

리설주가 국제무대에 데뷔하고 그 호칭도 공식화하는 등의 변화는 북한의 정상국가 이미지 확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두 남성 지도자의 뒤에서 두 여성 배우자가 나란히 걷는 모습은 대부분의 정상국가의 정상회담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제 남북의 국가 정상 배우자들이 나란히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을 온 세계가 보았다.

일반적인 (남성) 국가 지도자의 (여성) 배우자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질문을 품고 사는 입장에서 보자면 이런 정상화에 조금 난감해지긴 한다. 리설주의 패션에 대한 관심, 그를 향한 카메라의 노골적인 시선 고정 등 ‘리설주 정치학’이라는 말까지 등장시키는 이 상황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미모와 명품’을 빼고는 여성에 대해 도무지 할 말이 없는 이 정상국가의 모습. 송혜교만큼 예쁘다는 북한의 퍼스트레이디. 군사분계선을 마주하고 있는 분단국가의 차가운 분위기를 녹여주는 온화한 여자들의 역할. 특히 북한 여성을 바라보는 남한의 시선은 꾸준히 문제적이다. 한국 방송에서는 미국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와의 ‘미모 대결’까지 기대한다.

격변하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여성이 공식 사진에 등장하는 모습은 거의 배우자의 역할에 국한되어 있다. 이 ‘평화’ 속에서 여성의 역할은 무엇이며 그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 한반도에 평화가 온다는데 더불어민주당의 광역지자체 단체장 후보 중 여성은 한 명도 없다. 정상국가에서 여성들이 가진 자리와 역할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늘 그래 왔고, 이를 비정상이라 여기지 않는다. 정상(頂上)에 있는 그 남자들이 정상(正常)을 구성한다. 평화 속의 타자들은 누구일까.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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