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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지문인식기

등록 2018-05-23 18:23수정 2018-05-23 19:57

전우용
역사학자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의 고유한 개성은 부모, 고향, 생년월일시, 이름, 혈액형, 키, 몸무게, 얼굴 생김새와 체형, 출신 학교, 직업 등으로 구성되며, 이런 것들이 품성이나 취향, 가치관 등 보이지 않는 요소들과 결합하여 개인의 정체성을 이룬다. 그런데 이런 요소들을 남과 공유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많건 적건 이름이 같은 사람, 생년월일시가 같은 사람, 혈액형이 같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먼 옛날부터 권력은 자기 통제하에 있는 사람들에게 낙인과 비슷한 고유 식별부호를 부착하려 들었지만, 아주 오랫동안 ‘어느 동네에 사는 몇 살 먹은 아무개’보다 더 정교한 부호를 만들지는 못했다. 게다가 인간의 이동이 국가의 경계를 넘어 세계로 확장된 시대에는 이런 식별부호는 별 쓸모가 없었다. 사진 기술이 발명된 뒤에는 개개인의 사진을 권력기관이 보관하는 제도를 만들었지만, 사진 속 인물은 현실의 인물과 달리 늙지 않았다.

1880년, 일본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스코틀랜드인 의사 헨리 폴즈가 ‘손가락 주름’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 논문을 발표하기 전에 찰스 다윈에게 보냈는데, 다윈은 다시 자기 사촌 프랜시스 골턴에게 건네주었다. 골턴은 이 연구를 더 진전시켜 1892년 <지문>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그 직후 아르헨티나의 경찰관 후안 부체티치가 지문을 감식해 범인을 체포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후 지문이 인간 개개인에게 선천적 낙인과 같은 구실을 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 강점 직후인 1911년부터 범죄 수사에 지문 감식법이 도입되었는데, 그로부터 2년 반 뒤인 1913년 여름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가 확보한 지문 원지(原紙)는 3만4718매였다. 컴퓨터와 결합한 지문인식기는 1972년 미국에서 처음 개발되었으며, 1990년대 아이티(IT) 기술 발전과 더불어 상용화했다.

현대인은 공항, 은행, 직장 등 온갖 곳에서 지문인식기에 손가락을 대며, 이 간단한 동작으로 자신의 개별성과 고유성을 인정받는다. 인간의 고유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유형화하여 사주팔자, 점성술, 작명법, 관상술 등을 만들어냈던 옛사람들과 달리, 지문과 운명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도 현대인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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