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 황준범

등록 2018-05-23 18:55수정 2018-05-23 19:55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국가안전보장회의)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소련과의 냉전이 시작되던 1947년 안보·군사·외교 문제를 조율하기 위해 국가안보법에 따라 만들어졌다. 국무부뿐 아니라 각 부처와 군, 정보기관의 정보를 모아 대통령 판단을 도울 수 있는 상시적 기구가 필요하다며 의회가 법안을 통과시켜줬다.

국가안보보좌관(National Security Advisor) 자리는 1953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신설됐다. 장관급 회의를 주재하고, 온갖 정보를 받아보면서 대통령과 수시로 의견을 나누며 미국의 대외정책을 좌우하는 막강한 자리다.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대통령 시절 국가안보보좌관(1969~1975년)을 지낸 헨리 키신저가 대표적이다. 1971년 중국을 비밀 방문해 미-중 데탕트를 열었던 그는 1973년부터 2년간은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겸하기도 했다. 국가안보보좌관이 부도덕한 비밀작전에 개입해 물러나는 일도 있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 이란-콘트라 사건으로 두 명의 국가안보보좌관(로버트 맥팔레인, 존 포인덱스터)이 연거푸 사임했다.

국가안보보좌관은 의회 청문회를 거친 외교 수장 국무장관과 ‘누가 더 세냐’는 논쟁을 낳기도 한다. 외교·경제 컨설팅기업 로스코프 그룹의 시이오인 데이비드 로스코프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첫번째 임기 때 대외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국무장관(콜린 파월)도 국가안보보좌관(콘돌리자 라이스)도 아닌 딕 체니 부통령이었다”며 “대통령과의 관계에 달렸다”고 말한다.

1994년의 북-미 제네바 합의를 파기(2002년)하는 데 주역이었던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리비아 모델’로 북한을 자극해 북-미 정상회담 가는 길에 ‘존재감’을 과시했다. 볼턴이 그 지위와 영향력을 유지할지 또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에 달렸다.

황준범 국제뉴스팀 기자 jayb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