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환(1918~1994)은 사회운동에 투신하기 전에 시인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1973년 55살 늦은 나이에 출간한 첫 시집 <새삼스런 하루>는 젊은 날의 벗 윤동주에게 품었던 시인 콤플렉스를 벗게 해주었다. 3년 뒤 문익환은 유신체제를 탄핵하는 3·1민주구국선언을 주도한 ‘죄’로 구속됐다. 남은 삶의 태반을 보낼 옥살이의 시작이었다. 1980년 저 끔찍한 학살의 시간은 문익환을 남산의 지하실로, 육군교도소로 끌고 갔다. 공주교도소 독방에서 손수건만한 겨울 햇볕을 쬐다가 눈이 문득 발바닥에 머물렀다. 그 순간을 문익환은 뒷날 <히브리 민중사> 서문에 기록했다. “겨울이 되면 햇빛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밖에서는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 발바닥을 문지르다가 하루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묵묵히 땅을 딛고서 온몸을 지탱하는 발바닥에서 시인은 민중의 낯을 보았다. 문익환은 ‘발바닥 얼굴’이라는 시로 이 발견의 순간을 기념했다. “눈도 코도 귀도 없는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온몸으로 땅에 꾹꾹 찍힌 백성의 마음이구나.”
문익환은 그 뒤로 자주 발바닥을 노래했다. 발바닥을 노래하면서 스스로 발바닥이 되고자 했다. “이 눈을 후벼 빼 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볼 겁니다/ 이 고막을 뚫어보시라고요/ 난 발바닥으로 들을 겁니다.” 그 발바닥 마음으로 문익환은 1989년 새해 벽두에 시를 썼다. “나는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걸어서라도’ 가겠다고 다짐한 문익환은 그해 3월 평양에 들어가 김일성을 만났다. 금단의 벽을 뚫은 문익환에겐 다섯번째 감옥살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6월1일은 발바닥의 마음으로 분단의 선을 넘은 그 시인이 태어난 지 100돌 되는 날이다. 문익환은 생전에 “통일은 됐어!”라고 외쳤다. 머잖아 수많은 발바닥들이 남북을 오가며 시인의 잠꼬대 같은 외침을 현실로 만들 것이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