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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깡통

등록 2018-06-06 17:32수정 2018-06-08 16:04

전우용
역사학자

항아리, 두레박, 쪽박, 꽹과리의 공통점은? 한때 그 전부 또는 일부가 깡통으로 대체된 물건이었다는 점이다. 1880년 이 땅에 처음 들어온 석유는 한동안 한국인의 야간 조명 생활만 바꿨을 뿐이다. 더 심대한 변화를 이끈 것은 내용물이 아니라 그 용기(容器)였다. 당시 석유를 담는 통은 앞뒤로 주석을 입힌 얇은 철판으로 만들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르고 잘 찌그러지는 이 철판을 양철(洋鐵)이라고 불렀다.

뒤이어 조금 작은 양철통에 담긴 물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1804년, 프랑스의 요리사 니콜라 아페르는 음식물을 조려 멸균한 뒤 유리병에 담아 장기 보관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로부터 6년 뒤인 1810년, 영국의 기계공 피터 듀랜드는 유리병을 양철통으로 대체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는 자기가 발명한 철제 통에 틴 캐니스터(Tin Canister)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 말이 변해 캔(CAN)이 되었다. 일본인들은 이를 칸(罐)이라고 번역했는데, 이 물건이 조선 해관 수입품 목록에 처음 등장한 해는 1883년이었다.

통조림은 1904년 러일전쟁 중에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 되었고, 1911년부터는 동남해안 어항(漁港) 주변 각처에서 정어리, 병어, 꽁치 등을 통조림으로 만드는 산업이 발흥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어 칸에 통(桶)을 붙인 깡통이라는 단어를 양철통 일반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중반께부터로 추정된다.

모든 물자가 부족했던 시절에, 깡통은 드물게 흔한 물건이었다. 여러 크기의 빈 깡통들이 각각 적당한 용도를 찾아 가정과 공장, 학교와 사무실 등에 들어갔다. 우물에서는 두레박이 되었고, 측간에서는 휴지통이 되었으며, 안방에서는 바느질통이 되었고, 사무실에서는 휴지통이 되었다. 거지 밥그릇도 깡통으로 바뀌어 ‘쪽박 찬다’는 말이 ‘깡통 찬다’로 변했다. 해방 직후에는 깡통을 재가공해 버스 차체를 만들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온갖 종류의 음식료품이 깡통에 담겨 판매된다. 용도를 바꿔 재사용하는 경우는 현격히 줄었으나 깡통계좌나 깡통주택이라는 말에서 보는 바와 같이, ‘비어 있음’ 또는 ‘망했음’을 의미하는 보편적 상징성을 획득했다. 심지어 사람을 깡통에 비유하기도 한다. “빈 깡통이 요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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