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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구멍가게

등록 2018-06-13 21:27수정 2018-06-13 21:36

전우용
역사학자

주택가 도로변 상점 앞에는 으레 파라솔 테이블이나 평상이 놓여 있어 통행에 불편을 끼친다. 상인들이 공공 공간인 도로의 일부를 사적으로 점유하는 현상은 보편적이지만, 한국 도시에서 유독 심하다.

상점들이 가로변에 즐비하게 늘어선 곳을 시(市), 행상이 모여들었다가 물러나는 곳을 장(場)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관습적으로 시가 장보다 우세한 상업공간을 시장, 그 반대인 곳을 장시라고 불렀다. 조선 초기 왕조 정부는 서울 종로와 남대문로 양측에 수천 칸의 행랑을 짓고 그중 다수를 상인들에게 내주어 시전(市廛)으로 쓰게 했다. 이에 따라 종로와 남대문로는 거대한 시전가(市廛街)가 되었다.

시전 상인들은 국가에 현물이나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신에 ‘금난전권’(禁亂廛權)이라는 영업 독점권을 얻었다. 그들은 자기네 조합인 ‘도중’(都中)에 가입하지 않고 장사하는 사람을 보면 떼로 몰려가 구타하고 물건을 빼앗을 수 있었다. 그 기세가 얼마나 등등했던지 ‘각전 상인 난전 몰듯 한다’는 속담까지 생겼다.

1791년, 정조는 거래 규모가 큰 6종의 상품을 취급하는 시전(=육의전)의 금난전권만 남기고 나머지 물종은 아무나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게 했다. 그 직후 시전가 도로 위에 작은 상업용 가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왕의 행차나 국상 등 큰 행사가 있을 때에는 철거했다가 다시 짓곤 했던 이 가건물을 가가(假家)라고 했는데, 이 말이 변해 ‘가게’가 되었다. 시전 행랑에 비해 워낙 작았기 때문에, 흔히 ‘구멍가게’라고도 했다.

종로와 남대문로의 가게들은 1896~7년 사이에 다 철거되었으나, 그 이름은 오히려 상점 일반을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20세기에 접어들 무렵부터 가게들은 규모에 걸맞지 않게 상회, 상사 등이라고 쓴 간판을 내걸기 시작했다. 이런 관행은 최근까지 이어져 아무리 작은 상점이라도 이름은 슈퍼마켓이나 마트였다.

이제 개성 있는 이름을 가졌던 작은 상점들은 사라지고 대기업 상호로 통일된 편의점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구멍가게를 슈퍼마켓으로 키울 수 있다는 영세 상인들의 꿈도 사라졌다는 징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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