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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독거중년을 부탁해 / 황보연

등록 2018-06-17 20:44수정 2018-06-18 14:13

황보연
정책금융팀장

소득 하위 20% 가구인 1분위의 소득 감소는 사실 2년 전부터 심상찮은 조짐을 보였다. 특히 일을 하고 받는 임금인 근로소득이 뚝뚝 떨어졌다. 각 연도 1분기를 기준으로 보면, 2016년 1분위 근로소득은 57만5천원으로 한해 전보다 7.4% 줄었다. 이어 지난해엔 5.2% 감소한 54만6천원에 그치더니, 급기야 올해는 13.3%나 줄어든 47만3천원으로 추락했다. 올해 감소폭이 워낙 커 충격이 컸지만, 이미 최근 몇년새 저소득 가구의 벌이가 계속 나빠져온 것이다.

이전 10여년간은 대체로 조금씩이나마 소득이 증가해온 추이를 돌아보면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같은 심각한 위기가 닥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다소 개선되는가 싶던 소득분배 지표들도 다시 악화하고 있다. 불평등 문제를 연구해온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16년의 불평등 심화는 다소 의외의 현상이다. 이전의 예를 보면, 이런 추이는 적어도 수년간 지속된다”고 봤다.

물론 소득분배 악화를 이끈 요인으로는 고령화가 우선 꼽힌다. 1인가구를 포함해서 보면, 1분위 가운데 독거노인과 노인끼리만 사는 가구의 비중이 60%에 달한다. 이런 비중은 점차 높아져왔다. 아직 공적연금이 노후소득을 책임지지 못하는 우리 사회에서 노인가구가 많아진다는 것은 빈곤가구 확대를 의미한다.

그런데 더 우려스러운 대목은 가구주가 노인이 아닌 가구의 처지다. 아직 근로능력이 충분한 연령대의 가구에서도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이 곤두박질치고 있기 때문이다. 2년 전 저소득 가구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독거중년’들은 그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처지에 내몰려 있었다. 당시 40대 중반에서 50대 초중반이었던 이들은 대체로 실직이나 사업 실패 이후 배우자와 잦은 다툼 끝에 이혼한 경우가 많았다. 혼자가 되면서 맞닥뜨린 현실은 소득과 주거의 불안정이었다. 영세 자영업과 하청업체, 일용직, 공공근로를 전전하며 사는 독거중년들은 벌이가 좋을 때는 한 달 150만원을 벌기도 했지만, 일이 없을 때는 100만원을 한참 밑도는 돈으로 버틴다고 했다. “(일반 직장에 재취업이 어려운 상황인데) 공공근로조차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겨우 할 수 있더라”는 하소연도 들렸다. 일정한 주거지가 없이 임대주택과 고시원, 여관을 돌아다니는 이들도 적잖았다.

무엇보다 이들은 경기 변동에 매우 민감하게 타격을 받곤 했다. 주된 일자리 형태가 임시·일용직이다 보니, 경기가 나빠지면 곧바로 ‘무직’으로 전락하기 쉬운 구조였다. 2016년 조선업 구조조정의 후유증이나 사드 갈등에 따른 음식점·숙박업 타격, 올해 자동차 구조조정과 건설업 침체 등의 여파가 고스란히 이들에게 옮아갔을 것이란 얘기다. 올해 1분기에 1분위 가구 가운데 무직 비중이 늘어난 것도 임시·일용직 일자리 감소가 끼친 영향이 적잖아 보인다.

가난한 독거중년이 미래에 빈곤노인의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심각성은 더해진다. 우리나라 전체 1인가구 중 40~5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5년 21%에서 2016년엔 33%로 높아졌다. 독거중년들은 같은 연령대의 다인가구에 견줘 근로빈곤을 겪는 비중이 훨씬 높다.

사정이 이런데도 그간 정부 정책은 이들에게 인색한 편이었다. 실업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이 일이 없을 때 받을 수 있는 지원은 마땅치가 않다. 저소득 가구에 대한 소득지원이 대체로 고령층이나 극빈층에 맞춰져 있는데다, 우리나라의 복지제도가 대부분 다인가구를 위주로 설계돼 있다는 점도 불리하게 작용한다. 한 예로, 근로빈곤가구를 지원하는 제도인 근로장려금(EITC)을 50대 1인가구가 받기 시작한 것도 불과 2년 전의 일이다.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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