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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한글

등록 2018-06-20 18:10수정 2018-06-20 19:25

전우용
역사학자

1443년 만 46살의 조선 국왕 이도는 모든 소리를 글로 옮겨 적을 수 있는 글자 28개를 만들었다. 그는 이 사실을 공포하면서 취지를 이렇게 밝혔다.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로 서로 맞지 아니하여 어린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바 있어도…”

이 28개 글자 모음의 이름은 훈민정음, 즉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였다. 28‘자’(字)를 만들었다고 했으면서도 이름을 ‘음’(音)으로 붙인 것은, 온전한 글자라면 뜻까지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자를 익힌 사람들은 이 글자를 언문(諺文, 속된 문자)이나 반글이라고 불렀다. ‘반글’이라고 한 것은 ‘반말’과 같은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반말이 ‘낮춤말’로 쓰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우리말의 복잡한 어미 활용을 익히지 못한 어린이들의 말이었다. 이 글자를 쓰는 것은 스스로 ‘어린(어리석은) 백성’임을 인정하는 일로 취급되었다.

훈민정음은 만들어진 뒤 50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주로 한자의 음을 표기하고 토를 다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성원, 사장, 지원, 양식, 고문, 조화 등 앞뒤 맥락을 따지지 않으면 뜻을 알 수 없는 단어가 무수히 많은 한자어를 사용하며 살았기에, 뜻은 표현하지 못하고 소리만 표현하는 글자를 온전한 문자로 취급하지 않는 태도도 나름의 정당성을 얻었다.

1894년 청일전쟁 이후 훈민정음은 ‘나라 글자’라는 뜻의 국문(國文)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1896년에 창간된 <독립신문>은 훈민정음만으로도 온전한 문자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1907년에는 정부 기관으로 국문연구소도 설치되었다. 그러나 나라가 망한 뒤 일본의 ‘가나’가 새로 국문의 자리를 차지했다. 주시경이 붙인 ‘한글’이라는 이름이 일반화한 것은 1927년 조선어연구회가 잡지 <한글>을 창간한 뒤이다.

한글은 인류 문명사에 빛나는 우리의 창작품이다. 창작자와 창작 원리가 분명하며,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문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글 덕에 쉽게 지식과 감성을 교환할 수 있었고, 빠르게 국민으로 통합되었다. 한글의 유일한 단점은, 글씨는 읽을 줄 아나 글은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을 양산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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