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아이스케키

등록 2018-06-27 18:26수정 2018-06-28 11:16

전우용
역사학자

“영수가 아무리 졸라도 아이스케키는 절대로 사 주지 마시오. 여름철에 가장 위험한 음식이 아이스케키외다. 부모님께도 사 주지 마시라고 신신부탁드리시오.”

1954년 외국에 유학 중이던 한국인 의사가 부인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영수 어머니가 아들에게 아이스케키를 안 사주고 배길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아이스케키는 거의 유일한 여름철 군것질거리였다. 더구나 아이스케키를 손에 쥐는 것은, 살 만한 집 자제라는 표시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아이스케키 통을 메고 온종일 땀에 젖어 거리를 헤매면서도 제 입에는 하나도 넣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한겨울에 채취한 얼음을 한여름까지 보관하는 빙고(氷庫)는 신라시대부터 있었고, 조선 후기에는 민간업자가 경영하는 사설 빙고들도 생겼으나, 왕공귀족이나 어지간한 부자가 아니면 여름에 얼음 먹을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여름철 얼음이 흔해진 것은 전국 각지에 제빙(製氷) 공장들이 출현한 1926년부터다. 얼음을 입에 넣으면 잠시 냉기를 느끼기는 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1932년께부터 아이스케키라는 이름이 붙은 군것질거리가 시중에 모습을 드러냈다. 설탕물이나 사카린 탄 물을 얼려 작은 막대기에 꽂은 간단한 음식이었지만, 더위에 지친 사람들을 유혹하기에는 충분했다. 아이스케키는 시원하고 달콤했으나 위험했다. 이후 총독부는 여름철마다 아이스케키 공장과 장사꾼들을 대상으로 위생검사를 실시했지만, 위험은 줄지 않았다. 아이스케키는 1930~40년대 내내 장티푸스 발병 원인 1~2위를 다투었다.

1960년 무렵이 되어서야 아이스케키의 위험성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1970년대 중후반부터는 불량식품의 대명사 격이었던 아이스케키라는 이름 대신 하드나 아이스바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오늘날 주택가 작은 상점 입구에는 거의 어김없이 아이스케키가 든 냉동고들이 놓여 있다. 사람의 성정으로 보면, 달콤함은 따뜻함과 어울리고 쌀쌀함은 씁쓸함과 어울린다. 가슴에 냉기를 품고도 얼굴엔 달콤한 미소를 짓는 훈련을 거듭하는 현대인들에게, 아이스케키는 참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