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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기상 관측 기기

등록 2018-07-11 19:49수정 2018-07-12 09:18

전우용
역사학자

‘기상 관측 이래 최대 강우량’, ‘기상 관측 이래 최고 기온’ 같은 말들이 신문 방송의 관용어로 자리 잡은 지 꽤 오래되었다. 그런데 정말 ‘기상 관측 이래’ 최대이거나 최고일까? 인류는 언제부터 기상을 관측했을까?

인간은 등을 땅에 대고 자는 유일한 동물이다. 구석기 시대 인간들이 잠들기 직전, 그리고 잠에서 깨자마자 본 것은 대개 하늘이었다. 구름의 색깔이나 형상을 보고 그날의 기후를 판단하는 인간의 능력은 아마 그때부터 생겼을 것이다. 별자리 운행의 규칙성을 이해하고, 그를 토대로 연(年) 월(月) 일(日) 시(時) 등의 시간 개념을 획득한 것은 청동기 시대부터였을 테고. 고구려의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그 시대 사람들이 얼마나 정밀하게 천체를 관찰하고 기록했는지 잘 보여준다.

밤에 보이는 별자리가 천문(天文), 낮에 보이는 구름이 기상(氣象)이다. 옛사람들은 농사의 풍흉에 직결되는 날씨뿐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의 길흉화복도 ‘하늘의 뜻’에 달려 있다고 믿었기에, 늘 천문과 기상을 세심하게 살폈다. 조선시대 천문기상 관측을 담당한 관서의 이름은 서운관(書雲觀)이었다. 대원군이 살았던 운현궁은 ‘서운관 고개’에 있었기에 붙은 이름이다. 서운관은 세조 때 관상감으로 바뀌었는데, 밤새 천기를 살펴 기록하고 임금이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이상 유무를 보고하는 게 그 임무였다.

1907년 2월1일, 대한제국 정부는 측후소 관제를 공포하고 같은 달 19일 인천에 측후소를, 한성과 평양, 대구에 각각 측후지소를 설립했다. 측후소에는 온도계, 기압계, 풍향계, 습도계 등을 설치했으니, 우리나라에서 ‘기상 관측 이래’는 이때부터다. 한성 측후지소는 현 서울대학교병원 남쪽에 있었는데 1908년 경성측후소로 승격했고, 1933년 송월동으로 옮겼다. 1998년 기상청이 대방동으로 이전한 뒤 기상청 서울관측소가 된 이곳 마당에는 몇 종류의 꽃나무가 있다. 이들 나무에 꽃이 피는 날이 서울의 꽃 종류별 공식 ‘개화일’이다.

문명 진보의 역사는 인간이 미래를 예측하고 그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워 온 과정이다. 지난 한 세기, 천문기상을 예측하는 인간의 능력은 비약적으로 진보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능력은 거의 진보하지 못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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