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1933년 가을, 조선의 명의(名醫)라는 평을 듣던 의학박사 김아무개씨와 서울의 명문 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 김아무개씨의 결혼식이 열렸다. 앞의 김씨는 33세, 뒤의 김씨는 25세였다. 식민지의 척박한 지성 풍토에서 두 지식인 엘리트의 결혼은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이로부터 얼마 후, 의학박사 김씨는 기독교계 의학전문학교 교수로 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평소 바라 마지않던 바라 즉시 응했으나, 학교는 갑자기 없던 일로 해버렸다. 어찌 된 영문인지 수소문한 끝에, 그는 자기 결혼식이 문제였음을 알았다. 장안에 떠들썩하게 소문난 결혼이 사실은 중혼(重婚)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시골에 남겨둔 본처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중혼하는 지식인은 무척 많았고, 사회적으로 별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중혼을 문제 삼는 곳은 기독교계 정도였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도 본처를 둔 채 프란체스카와 중혼했다. 공(公)에 대립하는 개념이자 영역이 사(私)이다. 가장 기본적인 사생활 영역은 가정이며, 가정을 이루는 일차적 행위가 혼인이다.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에 혼인은 국가의 공인(公認)이 필요 없는 가문과 가문 사이의 사적 결합이었다. 혼례식이라는 의례를 통해 혈연공동체와 지역공동체에 ‘선포’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현대는 공과 사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사생활 영역에 대한 공공의 개입이 확대되는 시대이다. 1909년 3월에 제정된 ‘민적법’은 호주에게 본인이나 자녀의 혼인 사실이 발생한 경우 10일 이내에 신고할 의무를 규정했다. 그러나 이는 ‘혼례식’을 치렀다는 사실을 공증하는 것일 뿐, 혼인의 법적 효력과는 무관했다. ‘관청에 신고된 혼인만 유효하다’는 원칙이 정립된 것은 1923년 7월이다. 그러나 한동안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고, 거꾸로 상대의 의사와 무관하게 허위로 혼인신고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았다. 혼인신고서의 중요성이 높아진 것은, 역설적으로 이혼이 늘어난 결과였다. 오늘날 한국 사회 일각에는 동성혼을 합법화하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일각에는 혼인제도 자체를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의 혼인신고서는, 가족제도의 미래를 둘러싼 갈등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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