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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수영복

등록 2018-07-25 18:26수정 2018-07-26 12:42

전우용
역사학자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치지 않는다”는 옛 속담이 있다. 뒤집어 생각하면 평민 이하는 개헤엄을 쳤다는 뜻인데, 우리나라에 양반용 헤엄이 따로 있었을까? 옛날에는 평영을 개구리헤엄, 배영을 송장헤엄이라고 했다. 개, 개구리, 송장이 모두 좋은 뜻은 아니다. 양반이 수영을 필수로 배웠다는 기록도 없다. 한국인들에게는 개헤엄이 가장 초보적이고 일반적인 영법(泳法)이었다. 저 속담은 양반 행세하는 사람을 놀리는 말이었을 뿐이다.

네발짐승은 사전 훈련 없이 물에 빠져도 꽤 오랫동안 헤엄을 친다. 인간은 두 발로 걷는 대신 배우지 않고는 헤엄칠 수 없는 특별한 포유류가 되었다. 물에 빠졌을 때를 기준으로 삼으면 인간은 두 종류로 나뉜다. 헤엄치는 인간과 못 치는 인간.

수영을 우리말로 ‘헤엄’이라고 하는 것은, 물에 빠졌을 때 헤어나기 위한 동작이었기 때문일 터이다. 우리 선조들이 물에 들어가는 것을 즐겼다면 이런 단어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귀신도 물귀신이다. 그러나 한여름 무더위는 물귀신보다도 무서웠다. 이런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물에 발을 담갔지만, 깊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당연히 수중 활동을 위한 별도의 옷도 없었다.

1912년 여름, 인천 월미도에 우리나라 최초의 해수욕장이 생겼다. 1915년에는 마산에, 1916년에는 통영과 함흥에, 1918년에는 원산에도 해수욕장이 만들어졌다. 이 무렵의 해수욕장 경영자들이 고객에게 빌려준 해수욕복은 잠방이와 적삼이었다. 물론 남자 욕장과 여자 욕장은 구분되었다.

수영과 물놀이 전용 수영복이 우리나라에 첫선을 보인 것은 1920년께로 추정된다. 1922년 8월, <매일신보>는 월미도에서 물놀이하는 여성 사진을 실었는데, 하반부가 무릎까지 내려오는 길이였을 뿐 상반부는 오늘날의 원피스형 수영복과 똑같았다. 이후 수영복 시장은 급속히 확대되어 1930년께부터는 ‘올여름 유행할 수영복’ 기사가 신문지면에 빠지지 않았다.

수영복은 물놀이용 의복에 머물지 않고 인체 노출의 허용치에 대한 평균적 감각을 바꾸는 구실도 했다. 여름을 ‘노출의 계절’이라고 부르게 된 건, 거의 전적으로 수영복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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