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 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관직에서 물러나 유유자적 전원생활을 즐기는 양반이 어린 종의 게으름을 탓하는 시조다. 그런데 이 양반은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다 갈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지 알기나 했을까? 신석기시대 농사를 시작하면서, 인간에게는 놀라운 능력이 생겨났다. 최초의 농사는 봄에 씨앗을 심고 가을까지 기다렸다가 수확하면 되는 일이었으나, 이 간단한 일이 인간의 예측과 계획 능력을 비약적으로 신장시켰다. 농사짓는 인간은 씨앗을 심으면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싹이 트며,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곡식이 영글고, 또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수확할 수 있는지를 예측하고 그에 맞추어 할 일을 계획해야 했다. 이로써 인간은 ‘계획하는 동물’이 되었다. 하지만 하늘은 종종 인간의 예측을 비웃었다. 씨앗을 심기로 계획한 날 폭우가 쏟아지기도 했고, 잡초 뽑기로 계획한 날 폭염이 세상을 덮기도 했다. 다행히 하늘은 인간처럼 야박하지 않았다. 계획보다 하루 이틀 빠르거나 늦게 처리한다고 해서 큰 차질이 생기는 일은 별로 없었다. 인간의 생활과 노동을 구획하는 단위 시간대가 짧아진 것은 자연환경 대신 인공 구조물이 주된 노동 장소가 된 뒤였다. 물론 이 변화에는 기계식 시계도 큰 몫을 담당했다. 근대화는 인간이 시간 단위로 세분된 생활에 익숙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학교, 공장, 군대 등의 조직이 구성원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친 것은 각각의 활동에 배분된 시간 지키기였다. 일단 이런 조직에 소속되어 그 시설 안에 들어가면, 시간 생활은 완전한 타율의 영역에 놓였다. 조직 속의 인간은 계획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었다. 집집마다 시계가 놓인 1960년께부터, 초등학교 방학숙제에 ‘생활계획표’ 그리기가 추가되었다. 시간 규율에 익숙한 생활을 흩뜨리지 말라는 사회의 요구를 담은 숙제였다. 학생들은 먼저 시계 모양의 원을 그리고, 그 안을 면으로 구획하여 자기 일상의 일부씩을 담는 훈련을 반복했다. 생활계획표는 타율을 자율로 인식하고 시간 규율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현대인을 만드는 데에 큰 구실을 한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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