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2.02 20:59
수정 : 2005.02.02 20:59
교육부총리에 결국 김진표씨가 취임하였다. 많은 교육관련 단체 및 시민사회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기준씨에 이어 김진표씨를 밀어붙인 이유는 대학도 산업이라는 독특한 교육관이 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경쟁력의 논리로 대학을 변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거의 막가자는 이야기다. 그러나 기왕 이렇게 막나가기로 한 마당에 화끈하게 교육정책을 펴보는 건 어떨까.
누가 뭐래도 한국 교육문제의 일순위는 공교육의 부실과 사교육의 과잉이고, 그 원인은 대학입시 과열에 기인한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부 교육단체들이 주장하듯 대학을 평준화하거나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주장하듯 경쟁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전자의 방법은 뚜렷한 증거는 없지만 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주장되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으로 채택될 수 없다. 따라서 후자의 방법이 최선인데 이를 위해서는 중학교부터 입시를 부활하는 편이 낫다. 아니 가능하면 초등학교도 시험 봐서 가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아이들이 인성교육에 막대한 지장은 있겠지만 고등학교 때쯤에는 대학 갈 아이들이 거의 결정되기 때문에 사교육 시장은 상당히 축소될 것이다. 공교육이 입시학원화하고 초등학생 때부터 아이들을 잡기는 하지만, 그러면 무슨 대수랴, 믿을 수는 없지만 경쟁력이 담보된다는데.
대학도 이렇게 두어서는 안 된다. 대학 경쟁력을 강화하고 산업수요에 부응하는 대학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학과를 정리해야 한다. 문과 계통에서는 대략 경영학과를 비롯한 몇몇 실용학과만 두고, 이과 계통에서는 기초학문을 정리하고 철저히 직업교육을 해야 한다. 나머지 학문들이야 교양과목으로 해서 간단한 교육만 받게 하면 된다. 물론 이렇게 하면 사회의 장기적인 경쟁력을 담당하는 기초학문이 완전히 사라지겠지만 당장 돈되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과감해야 한다. 이참에 교수들의 철밥통을 없애버리고 막나가는 게 일관된 교육정책이다.
기왕 막나가는 김에 한국의 대학원은 대부분 정리해야 한다. 미국 대학 박사학위 취득자 중 미국을 제외한 최대 박사학위 취득대학이 서울대학교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한국의 대학원은 대학원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이렇게 경쟁력 없는 대학원을 유지할 필요가 무엇이 있는가. 학생들이 가려고 하지도 않고, 선생들도 유학을 권유하는 마당에 일부 경쟁력 있는 대학원을 제외하고 모든 대학원을 없애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면 한국 교육뿐만 아니라 한국 지식계의 자생적 재생산체계는 완전히 없어지겠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경쟁력을 제고해야 되는데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으면서 화가 나도 그렇지 농담이 좀 심하지 않냐고 생각할 것이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국에서 진정한 교육이 사라질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경쟁력이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위와 같은 경향이 지금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부터 사교육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굳이 지적할 필요가 없고, 지금 대학에서 기초학문은 거의 붕괴될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 역시 명백하다. 또한 서울대 교수의 52.8%가 미국박사이고, 거의 국내박사로 구성된 의치대를 제외할 경우 거의 대부분이 미국박사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은 도쿄대의 미국박사 비율 3.2%와 비교해 볼 때 이미 한국의 대학원이 그 기능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농담처럼 말한 위와 같은 제안이 조만간 제시되지 않을 것이라 누가 장담하겠는가.
한국의 대학교육은 분명히 개혁되어야 한다. 그러나 개혁에도 선후가 있다. 대학교육의 반을 일용잡급직인 시간강사들에게 맡기고, 백명, 이백명에 이르는 대형강의실에 학생들을 구겨넣으면서 대학교육의 경쟁력을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정부가 그렇게 바라는 경쟁력이 생기기 위해서는 일단 기본은 갖추어야 한다. 무너져가는 한국 교육을 되살리기 위해 이제 기본부터 찬찬히 되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김정훈/ 성공회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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