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뉴스팀장 제주도에 ‘예멘 난민’이 몰려들었을 때 한국 사회를 당혹스럽게 한 것은 우리가 이들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평균적인 한국인이 예멘과 같은 제3세계 국가와 접촉할 기회는 우연히 축구 에이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를 하게 될 때(마지막 에이매치는 1988년이었다)를 빼고는 전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9일 밤 야근을 하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중심이 된 아랍 연합군이 예멘 후티 반군의 거점인 북부 도시 사다를 폭격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탄 스쿨버스를 폭격했다는 속보가 들어왔다. 숨진 아이들이 40명에 이르는데, 미국 등의 지원을 등에 업은 사우디는 “적법한 군사행동이었다”고 우기는 중이고, 국제사회가 적절히 개입할 여지는 없어 보였다. 답답한 마음에 ‘잊혀진 전쟁’이라 불리는 예멘 내전 자료를 뒤지다 여성 감독 카디자 알 살라미의 기록영화 <예멘: 어린이와 전쟁>(Yemen: Kids and War)을 접하게 됐다. 영화는 친척인 아흐메드(11), 유세프(9), 리마(8)라는 이름의 세 아이가 최악의 내전을 겪고 있는 예멘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을 그린다. 32년 동안 예멘을 통치해온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은 2011년 초 시작된 중동의 민주화 투쟁인 ‘아랍의 봄’을 계기로 정권을 잃었다. 2012년 2월 부통령이던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가 대통령에 취임해 사태 수습에 나서지만, 시아파 무장조직인 후티 반군이 반발하면서 내전이 시작됐다. 이들이 2014년 수도 사나를 점령한 뒤 하디 대통령은 사우디로 탈출했다. 홍해 입구에 자리잡은 예멘이 적대 세력의 손에 들어가면 사우디 홍해 연안은 봉쇄될 수 있다. 사우디는 대응을 결심했고, 이후 내전은 후티 반군을 지원하는 시아파 종주국 이란과 사우디가 다투는 ‘대리전쟁’으로 발전했다. 2015년 3월 사우디 등의 폭격이 시작된 뒤 1만명이 숨지고, 인구 2700여만명 가운데 840만명이 아사 위기에 놓이게 됐다. 지난해엔 콜레라가 창궐해 2000여명이 숨졌다. 영화에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던 풍자 작가 피크리는 “우리 모두 이 전쟁이 왜 난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 그런데 젊은 사람이고 나이 든 사람이고 답을 못해. 플레이스테이션을 하듯 게임을 하는 외부 세력이 있지”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2017년 초 엄마를 잃은 오누이와 대화를 나눈다. “엄마는 어떻게 죽었니?” “엄마가 우릴 침대에 눕히고 동생을 감쌌어. 그때 총알 같은 게 엄마 머리에 맞았어. 엄마가 없었으면 내가 맞았을 거야. 피가 이곳저곳으로 튀었어.” “너, 울었니?” “응. 사람들이 엄마를 병원에 데려갔을 때 울었어.” 주드라는 이름의 네 살짜리 여자아이는 “전쟁이 싫다”며 폭격에 대한 공포로 하얗게 세어버린 앞머리를 보여준다. 흥미로운 장면은 예멘의 ‘래퍼’(!) 마즈디 알 지아디가 사나의 무너진 건물 더미 속에서 아이들과 랩을 하는 장면이다. “나는 예멘인/ 내 머리는 언제나 꼿꼿하지/ 폭탄은 밤낮없이 떨어져/ 난 계속 저항해/ 내 신념에 충실해/ 누구도 날 이길 수 없지/ 아이들이 이 더러운 전쟁에서 죽을 만한 어떤 죄를 지었나요/ 신이여 난 알고 싶어요.” 영화는 최악의 비극 속에서도 존엄을 잃지 않으려는 예멘인들의 모습을 관조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축구장과 영화관과 정적과 평화이다. 유튜브에 영화명을 치면 42분 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다. 약자에 대한 무지는 때때로 잔인한 흉기가 될 수 있다.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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