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그는 남의 일에 참견함이 없이 부지런하고, 공격적이 아니면서도 침투적이고 … 남의 허물을 험잡음이 없이 지각이 예리하고 … 논쟁적이 아니면서도 결단성이 있고 품행이 단정하다.”
‘침투적’이라는 번역어가 어색한 만큼 오래된 책에 있는 글이다. 1960년 출판된 영어판의 제목은 〈직업 언론인〉이지만 81년 나온 우리말 번역본은 〈신문학〉으로 돼 있다. 한때 언론계 종사자의 애독서였던 이 책의 저자는 미국 언론인 존 호헨버그다. ‘그’는 ‘훌륭한 기자’를 말한다.
지난달 미국 〈뉴욕 타임스〉의 국가안보 탐사전문 기자인 주디스 밀러는 30년 가까이 다니던 회사를 떠났다. 조지 부시 행정부의 고위관리들이 흘리는 이라크와 관련된 허위 정보를 여과 없이 보도함으로써 독자를 오도했다는 게 주된 이유다. 취재원에 대한 침투가 지나쳐 정부 언론공작팀의 일원이 돼버린 셈이다. 황우석 교수팀 연구원들을 취재한 〈문화방송〉 ‘피디수첩’은 반대로 침투를 위해 너무 공격적인 방법을 쓴 것이 도마에 올랐다.
흔히 ‘언론의 위기’라고 한다. 수십년 주류 매체의 위상을 지켜온 신문과 방송에 대한 수용자 만족도가 계속 떨어지는 걸 보면 일리가 있다. 신문 쪽은 구독률과 광고수입까지 하락하고 있으니 체감 위기감이 더 크다. 하지만 주류 매체의 위기가 바로 언론의 위기는 아니다. 언론 없는 민주사회는 불가능한 이상 전환기를 거쳐 새 언론 환경이 만들어질 뿐이다.
문제는 그보다 언론인에게 있다. 사회와 언론환경이 개방되고 복잡해질수록 더 높은 수준의 언론윤리가 요구되는 것은 필연이다. 그런데 호헨버그 시대의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일이 잇따라 일어나니 ‘언론인의 위기’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어떤 상황에서나 언론인이 살아 있으면 언론도 사는 법이지만 그 역은 아니다. 그래서 외친다. 만국의 언론인이여, 살아남으려면 업그레이드 하라.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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