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그는 사냥꾼이다. 동료와 함께 사냥감을 쫓다가 날이 저물었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야영하는데 불이 꺼졌다. 맹수가 다가오지만 둘 다 기척을 느끼지 못한다. 그때 옆에 엎드려 있던 사냥개가 일어나 짖기 시작한다. 깜짝 놀라 깬 두 사람은 활과 화살을 집어 들고는 서로를 쳐다본다. 둘의 뇌리에 같은 생각이 스친다. “개가 너보다 낫다.” 그는 양치기다. 혼자서 100여마리의 양을 모는데 새끼 양들이 달아난다. 다행히 양치기 개가 있어 새끼 양들을 대열 안으로 몰아넣는다. 그에게는 개가 가장 유능하고 믿을 만한 동료다. 그는 농부다. 간밤에 닭 한마리가 없어졌지만, 집에서 키우는 개는 짖지 않았다. 개가 잘 아는 마을 사람 소행임은 분명한데, 누군지는 알 수 없다. 마을에 낯선 사람이라고는 닷새나 열흘에 한번 찾아오는 방물장수나 소금장수뿐이다. 영리한 개는 그들도 알아보고 짖지 않는다. 낯선 이가 찾아왔다고 알리는 건 오히려 동구 밖 나무 위의 까치들이다. 만물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그의 생활양식에 의해 규정된다. 수렵과 유목을 주로, 또는 자주 하는 사람들에게 개는 특권적 동물이다. 그러나 농사꾼들에게 개는 특권을 부여할 이유가 없는 가축의 하나다. 개는 인간에게 사육된 최초의 동물이지만, 문화권에 따라 그 위상이 달랐다. 유럽인들은 개와 고양이를 하나로 묶는 데 반해, 한국인들은 개와 돼지를 하나로 묶는다. 한국인들에게 개와 돼지는 최하급 가축이었다. 그래서 ‘민중은 개돼지’라고 하는 사람은 있으나, ‘민중은 마소’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한국인들이 개고기를 먹은 역사는 아주 긴데, 일제강점기까지는 이를 ‘개장’ 또는 ‘개장국’이라고 했다. 개를 천하게 여긴 양반들은 개고기 대신 쇠고기를 써서 따로 ‘육개장’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개장에 ‘보신탕’이라는 새 이름이 붙은 것은 6·25전쟁 중이었고, 1954년에는 서울시 경찰국장이 최초의 ‘개장국 판매 금지’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는 보신탕도 사철탕이나 영양탕으로 이름을 바꾸어야 했다. 개 식용 금지 여론이 계속 확산하고 있다. 현대 한국인들의 정체성이 ‘농경민족’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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