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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미얀마의 벗에게 / 길윤형

등록 2018-09-11 17:55수정 2018-09-11 19:07

길윤형
국제뉴스팀장

지난 3일, 하얀 셔츠 차림에 수갑을 찬 남자가 법원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전세계에서 몰려든 기자들이 앞다퉈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양옆을 지키고 선 미얀마 경찰이 그를 끌어내 재빨리 차에 태웠다. 그의 이름은 미얀마 국적의 <로이터> 통신 기자 와 론(32)이었다.

미얀마 양곤 북부법원은 이날 그와 동료 기자 초 소 우(28)가 “국가기밀법을 위반했다”며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이들이 중형을 선고받은 이유는 복잡하다면 매우 복잡할 수도, 간단하다면 간단하다 할 수 있다.

지난해 8월 말 미얀마 북부 라카인주에서 미얀마 군경과 이웃에 살던 불교도들이 무슬림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집단 학살했다. 학살의 원인에 대해선 여러 증언과 추측이 쏟아지지만, 미얀마 군경이 수천~수만명의 로힝야를 학살했고, 그로 인해 거주지를 잃은 로힝야 70여만명이 북쪽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피신해 난민이 됐다는 것은 흔들림 없는 ‘사실’이다. 두 기자는 지난해 8월 말 시작된 여러 로힝야 학살 가운데 9월2일 라카인주 ‘인 딘’ 마을 사건을 취재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2017년 12월12일, 경찰이 양곤 시내의 한 음식점으로 두 기자를 불러냈다. 경찰은 이들에게 서류를 넘겼고, 이를 들고 식당을 나서던 기자들을 체포했다. 국가기밀법 위반 혐의였다. 전형적인 ‘함정’수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을 음식점으로 불러낸 경찰이 법정에서 “이들에게 서류를 넘겨 구속하라는 상관의 지시를 받았다. 체포는 함정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취재하던 학살은 서양 국적의 동료들에 의해 기사화됐다. <로이터>는 2월8일 인 딘 마을에서 미얀마군이 무고한 로힝야 10명을 학살했다는 사실을 특종 보도했다. 숨진 이들은 17~45살의 평범한 남자들이었다.

기자들은 마을 장로에게서 3장의 사진을 확보했다. 한장은 살해당하기 전날인 9월1일 찍은 것이다. 겁먹은 눈빛의 사내들이 웃통을 벗은 채 무릎을 꿇고 있다. 두번째 사진은 살해당하기 직전인 2일 오전 찍은 것이다. 무릎 꿇은 남성들 뒤에서 총을 든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세번째 사진의 끔찍한 광경은 굳이 설명하지 않기로 한다. 숨진 이들은 어부, 점원, 고등학생, 교사였다. <로이터> 기자들은 방글라데시로 가 희생자들의 가족을 찾아내 증언을 채록했다. 고등학생 라시드 아흐메드(18)의 부친은 “가족 가운데 아들이 처음 고등교육을 받는 사람이 되길 원했다”고 말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머리 뒤로 손을 올린 남자들의 황량한 표정을 보면, 인간이란 무엇이며, 우린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가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모든 비극이 발생하기 5년 전인 2012년 6월16일, 노르웨이 오슬로에 미얀마 민주화 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199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지만, 21년 동안 세차례에 걸쳐 15년이나 가택연금을 당하는 바람에 시상식에 참여할 수 없었다. 21년 만에 열린 시상식에서 수치는 “절대적 평화는 우리 세계에서 성취할 수 없는 목표다. 하지만 이는 사막을 여행하던 이들을 결국 구원에 이르게 하는 길잡이별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흘렀다. 미얀마의 국가 지도자가 된 수치는 로힝야 학살에 침묵했고, 두 기자의 체포가 “취재가 아닌 국가기밀법 위반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얀마의 민주화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지난달 첫아이가 태어났다는 동료 와 론에게 서글픈 연대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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