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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복덕방

등록 2018-09-12 18:18수정 2018-09-13 12:40

전우용
역사학자

영어는 홈(home)과 하우스(house)를 구분하지만, 우리말로는 모두 집이다. 한국인은 집을 물리적 실체와 정서적 실체가 통합된 개념으로 인식한다. 한국인에게 집은 방, 마루, 부엌, 광, 마당, 담장 등으로 구성된 건축물인 동시에 조부모, 부모, 자식, 손자녀, 삼촌 등을 포함하는 가족이기도 하다. 한국의 직장인이 “집에 일이 생겨 조퇴하겠다”고 말할 때의 ‘일’은, 건물에 생긴 이상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에게 발생한 사고를 의미한다.

정착 농경사회에서 이사는 아주 드문 일이었다. 사람도 식물처럼 태어난 곳에서 평생을 사는 게 오히려 표준이었다. 재주 있는 사람을 인재(人材)라고 하고, 정착하는 것을 ‘뿌리내린다’고 하며, 뿌리 같은 성질=근성(根性)을 높이 평가한다. 분가할 경우에도 가급적 본가와 가까운 곳에 새 집을 지었으니, 상품으로 거래되는 집은 거의 없었다.

1394년, 한성을 새 도읍으로 정한 조선왕조는 타지에 살던 관료와 상인들을 이주시키고 집 지을 땅을 차등 있게 나눠주었다. 땅은 국유였고 집만 사유였다. 조선시대 서울은 새로 벼슬자리를 얻어 상경한 사람들과 관직을 잃고 낙향하는 사람들이 늘 오가는 이사의 도시였다. 상경한 사람들에게 살 집을 찾아주는 사람을 우리말로 집주릅, 한자어로 가쾌(家?)라 했는데, 보통 통수(統首)가 겸했다.

조선 후기 서울 인구가 늘어나고 경화세족(京華世族)이 관직을 세습함에 따라 집을 사고파는 일이 늘어났다. 가옥 매매를 알선하는 곳을 복덕방(福德房)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19세기부터로 추정된다. 복은 땅이 주는 것이고, 덕은 이웃이 베푸는 것이다. 그래서 집값도 그 집이 지닌 스토리에 크게 좌우되었다.

1985년 9월22일, 제1회 부동산 공인중개사 시험이 국가고시로 실시되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복덕방은 사라지고 대신 부동산 공인중개사 사무소들이 생겨났다. 더불어 가족 단위 정체성과 결합해 있던 집이 재산으로만 취급되는 추세도 가속화했다. 현대인에게는 가격이 많이 오를 가능성이 크기만 하면 좋은 집이다. 집은 부동산이나 사람은 유동인(流動人)이 된 것도, 이런 변화와 짝을 이루는 현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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