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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최고 지위의 여성이라도

등록 2018-09-13 17:56수정 2018-09-13 19:07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타계하고 거의 정확하게 70년이 지났다. 그렇지만 <문화의 유형>에서 발전시킨 문화상대주의의 개념은 여전히 큰 힘을 발하고 있다. 우리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여서는 안 된다는 통찰은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될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베네딕트는 미국 인류학회 회장을 역임하여 여성 최초로 학계를 대표하는 지위에 오른 사람이었다는 평을 받는다. 하지만 그것이 쉬운 길은 아니었다. 여자가 대학에 다니면 불임이 된다든가 애초에 결혼을 할 수 없다는 말들이 공공연하게 떠돌던 시대적 풍토 속에서 여성이 학문의 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일에는 능력에 못지않게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베네딕트는 언어학자 에드워드 서피어와 깊은 우정을 나눴다. 서피어는 문화 유형과 개인의 창조성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도록 베네딕트를 격려했다. 그뿐 아니라 그 둘은 시와 심리학 등 공통적인 관심사도 많았고, 서로가 서로의 저작에 비판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둘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베네딕트가 관심이 많던 여성해방의 문제에 서피어는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베네딕트의 경력에 크게 도움을 주었던 또 다른 인물은 은사 프란츠 보아스였다. 박사 학위 논문의 지도교수였던 보아스는 베네딕트가 콜롬비아 대학교의 훌륭한 자산이 되리라 확신하여 동료 교수로 이끌었다. 베네딕트가 “파파”라고까지 불렀던 보아스의 영향력은 그의 저작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당시의 인류학은 문화의 전파 방식에만 관심을 두었다. 그 사제는 문화를 언어, 예술 등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려 했고 그 자체가 인류학의 혁신이었다.

보아스가 은퇴한 뒤 많은 사람들이 베네딕트를 후임 학과장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대학 당국은 그가 지나치게 과격하다고 여겨 보수적인 참전 용사이자 베네딕트의 격렬한 비판자를 그 자리에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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