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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백두산

등록 2018-09-26 18:14수정 2018-09-27 09:10

전우용
역사학자

간도협약 100주년인 2009년을 앞두고, 몇몇 국회의원과 유력 언론사가 협약 무효화 운동을 벌였다. 조약은 체결 100년이 넘으면 되돌릴 수 없으니, 일본이 한민족의 의사와 무관하게 정한 국경선을 재설정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그들의 속단과는 달리, 당시 북한과 중국 사이의 국경선은 간도협약 때 그어진 상태 그대로가 아니었다. 북한과 중국은 이미 1962년에 간도협약을 무효로 하고 새로 조중변계조약을 체결하여 국경선을 다시 그은 바 있었다. 간도협약 무효화 운동은 국회의원과 언론인들조차도 이를 전혀 몰랐다는 사실만 드러낸 한바탕의 코미디였을 뿐이다.

그런데 한국(북한)과 중국 사이의 국경선이 일제강점기의 그것과 달라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조차, 대개는 북한 땅이 더 줄어들었다고 믿었다. 북한 정권이 백두산 주변 땅을 한국전쟁 참전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중국에 떼 주었다거나, 돈을 받고 팔아넘겼다는 이야기들이 정설처럼 떠돌아다녔다. 사실은 그 반대였다.

북한은 1887년과 1904년 조선/대한제국 정부가 주장하고 청나라가 거부했던 선을 새 국경선으로 요구해 관철시켰다. 그 덕에 백두산 천지 호안(湖岸)의 20% 남짓밖에 안 되던 북한의 영유권이 55% 정도로 늘어났다. 물론 한국 정부도 이 사실을 알았으나, ‘북한 정권이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마저 팔아먹었다’는 오해가 퍼지는 편이 유리하다고 느꼈던 듯하다.

남북한 어디에 살든, 한국인들에게 백두산은 민족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대표적 자연물이다. 하지만 백두산이 오늘과 같은 지위를 얻은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민족 또는 조선민족이라는 복합명사가 생긴 시점과, ‘성자신손 오백년은’으로 시작하던 애국가 가사가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바뀐 시점은 대략 일치한다.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이 백두산을 ‘조선의 영산(靈山)’으로 부른 것도, ‘일본의 영산 후지산’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현대의 한국인들에게 백두산은 전국 모든 산의 조종(祖宗)이자 민족사의 발원지이며, 항일 독립운동의 성지이다. 그래서 백두산 천지 가에서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은 모습에 더 각별한 느낌을 받는다. 그렇지만 막상 그려보라면 막막해지는 모호한 민족 표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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