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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전쟁은 너무 중요해서” / 서재정

등록 2018-10-10 17:55수정 2018-10-11 09:35

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전쟁은 장군들에게만 맡겨놓기에는 너무 중요하다.”

조르주 클레망소는 말만 한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했다. 그는 프랑스군이 유대인 포병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를 독일 간첩으로 조작하려던 ‘드레퓌스 사건’에서 군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에서는 총리로서 전쟁의 선두에서 군을 지휘하여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기도 했다.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도 군을 방기할 수 없었지만,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도 군대에 모든 것을 맡겨둘 수 없었다. 클레망소는 비판가로서 군을 견제하고 비판했지만, 총리로서 군을 지휘하고 전쟁의 최첨단을 책임졌다.

클레망소가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대형사고를 친 것은 일간지 <로로르>를 발행하던 중이었다. 1898년 1월13일 에밀 졸라의 공개서한을 이 신문 1면에 게재한 것이다. 원래 졸라는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진부한 제목을 붙였으나 클레망소가 ‘나는 고발한다’라는 도발적 제목으로 바꾸었다. 이 서한의 출판을 계기로 드레퓌스 사건은 당대 세계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당시 프랑스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참패한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나폴레옹 시대 이후 유럽 최강이라던 육군이 처참하게 무너지고 나폴레옹 3세가 포로로 잡히는 수모를 당했다. 그 충격의 여파로 프랑스 여론은 극도의 국가주의-애국주의로 기울었다. 강력한 군사력을 키워 ‘힘을 통한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여론이 득세했다. 국민단결과 국론통일을 내세우는 와중에 인종차별도 불거졌다. 유대인이던 드레퓌스 대위는 그 제단에 바쳐진 희생양이었다.

당시의 상황에 비춰보면 간첩 드레퓌스를 처벌하라는 군과 우익의 광풍에 맞섰던 클레망소와 졸라 등은 단지 한 인간을 옹호한 것만이 아니었다. 클레망소의 말대로 “정의로운 조국의 건설을 위해서” 자신을 내던진 것이었다. 이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는 했어도 결국 군의 음모와 조작이 드러났고, 영국으로 망명해야 했던 졸라의 명예도 회복됐다. “언젠가 프랑스가 자신의 명예를 구해준 데 대해 제게 감사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던 그의 예언대로.

클레망소는 이후 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7년 프랑스 총리로 임명됐다. 전황은 프랑스에 불리했다. 어마어마한 인명 손실을 기록하면서 전쟁 피로감이 극심했다. 정부 일각에서는 독일과의 타협을 모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클레망소 총리는 승리를 위해 전력투구했다.

군 지휘부를 경질했을 뿐만 아니라 최전선 참호를 방문하여 사병들과 직접 교감하기도 했다. 군을 비판하던 민간인이 군을 최고위부에서부터 최말단까지 직접 이끌었던 것이다. 시민들에게도 끝까지 싸워 이길 것을 호소하며 반대파를 구속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정부를 모욕할 권리는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며 언론의 자유를 지키려 노력했다. 결국 그는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어 ‘승리의 아버지’란 별명을 얻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정부의 수장으로 군의 문민통제 원칙을 확실히 집행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하지만 국방장관에 민간인을 임명하지 않고 장군에게 군대를 맡겼다. 계엄령 실행 준비를 하는 등 헌정질서를 위협했던 국군기무사령부의 수사와 개혁도 군대에 맡겼다. ‘셀프개혁’은 계속 이어져 현재 ‘국방개혁 2.0’도 국방부가 맡아서 하고 있다. 평양공동선언은 남과 북의 전쟁 종식을 천명했지만, 그에 따른 군비통제/군축도 군이 맡아서 할 듯하다.

안보는 군대에만 맡겨놓기에는 너무 중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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