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1877년, 부산 개항장에 일본 해군이 서양식 병원 제생의원을 설립했다. 병원의 일차 진료 대상은 부산에 거류하는 일본인이었으나, 자국의 문명 수준을 과시할 목적으로 가난한 조선인 환자들도 무료로 진료했다. 이 병원 의사였던 고이케 마사나오는 병원을 찾아온 조선인 환자들에게 무료 진료를 받으려면 먼저 신장계 위에 올라서라고 요구했다. 그는 1887년 <계림의사>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자기가 수집한 조선인의 생체 정보를 수록했다. 그가 측정한 조선 성인 남성의 평균 신장은 무려 180㎝로 일본인 남성 평균 157㎝보다 월등히 컸다. 그가 가져온 신장계가 불량품이었을 가능성이 99.9%다. 고이케는 원산, 인천의 일본인 의사들과 이 수치를 두고 토론을 벌였다. 동양인은 문명이 발전할수록 키가 작아진다는 둥, 조선인은 머리를 쓰지 않기 때문에 키만 크다는 둥 제국주의에 깊이 물든 의사다운 소견이 지배적이었으나,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고기를 많이 먹기 때문이라는 합리적인 의견도 있었다. “조선국은 고래로 상하가 모두 고기 없으면 밥을 먹지 않았다. 고기값도 무척 싸서 백성 대다수가 가난하지만 체격과 영양상태가 좋다. 일본인도 고기를 많이 먹으면 체격이 좋아질 것이다.” 1902년 대한제국 철도국 기사로 초빙된 프랑스인 에밀 부르다레도 신장계를 가지고 왔다. 그는 서울~개성 간 철도 공사장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의 키를 쟀다. 그의 신장계로 잰 조선인 남성의 평균 신장은 162㎝, 중국인 평균보다 1㎝, 일본인 평균보다 4㎝ 컸다. 님 웨일스는 1941년 <아리랑>에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나 동아시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는 현실이 안타깝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썼다. 100여년 전에도 동아시아에서 가장 컸던 한국인의 평균 신장은 지난 반세기 사이에 10㎝ 정도 더 늘어났다. 현대의 한국인은 인류 형질의 변화 과정을 가정 내에서 직접 목도한 사람들이다. 현대인은 자기 자식의 키를 인위적으로 늘리려는 욕망을 품고 그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특이한 인간이며, 신장계는 그 욕망의 충족도를 표시하는 물건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평균 신장이 늘어난 만큼 품도 넓어졌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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