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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종합경기장

등록 2018-10-24 18:16수정 2018-10-25 09:25

전우용
역사학자

기원후 80년, 로마에 거대한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이 건립되었다. 콜로세움이라는 단어의 유래에 대해서는 경기장 근처에 네로 황제의 청동상 콜로서스 네로니스(Colossus Neronis)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과 ‘거대하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콜로살레(Colossale)와 어원이 같아서라는 설이 있는데, 중세에는 ‘거대한 건축물’을 뜻하는 보통명사로 사용되었다. 로마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인 이곳은 검투사 경기나 초기 기독교도 학살을 소재로 한 영화의 무대로 자주 소개되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 극장인 협률사 극장(소춘대·笑春臺)도 콜로세움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도시들에는 거의 빠짐없이 거대한 극장(theatron)과 경기장(stadion)이 있었다. 이들 시설은 해당 도시 인구 전체보다 많은 인원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고대인들이 도시에 이런 시설물을 만든 이유는, 사람들을 끌어모아 신의 존재를 직접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수많은 사람을 동시에 열광(熱狂) 상태에 빠뜨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가 신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로마 제국과 함께 소멸했던 거대 경기장은 국가를 신으로 섬기는 시대에 부활했다. 1925년 10월15일, 서울 동대문 옆에 동궁전하 어성혼(御成婚) 기념 경성운동장이 개장했다. 당시 일본 황태자였던 히로히토의 결혼식을 기념하기 위해 경성부에서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경기장이었다. 유럽에서 태동한 근대 스포츠가 한반도에 전래된 것은 19세기 말이었지만, 경성운동장이 문을 열기 전에는 옛 군사훈련장이나 학교 운동장을 이용했을 뿐이다.

한꺼번에 수만 명이 들어가니 옥내라고 보기도 어렵고 출입문과 담장이 있으니 옥외라고 보기도 어려운 이 종합경기장은 스포츠를 돈 내고 관람하는 시대를 열었다. 한국에 두 번째 종합경기장이 개장한 것은 1960년인데, 현재는 도시마다 하나 정도씩 있다.

고대의 경기장은 관중에게 집단 신들림을 체험시키는 공간이었다. 그 점에서는 현대의 경기장도 다르지 않다. ‘신들림 체험’에 스트레스 해소라는 현대적 이름을 붙인 것이 다를 뿐. 인류는 가끔 제정신을 내보냈다가 되돌려 놓는 습성을 기른 특이한 동물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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