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어린 시절, 집에 진공관 라디오가 있었는데, 스위치를 돌리면 한참 기다려야 소리가 나왔다. 크고 무거워서 어린아이 힘으로는 움직일 수도 없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건전지로 작동하는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처음 보았다. 당시의 건전지는 요즘 것보다 훨씬 컸지만, 그래도 진공관 라디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웠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에는 수업 시간에 라디오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대부분의 물질은 전기가 잘 통하는 전도체와 안 통하는 절연체로 나뉜다. “벼락 맞아 죽을 놈”이라는 욕설이 생긴 것은 사람 몸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물도 전도체이기 때문이다. 전기를 기준으로 통하느냐, 안 통하느냐의 이분법에서 벗어난 물질들이 있는데, 이런 물질이 반도체이다. 1947년, 미국 벨연구소의 윌리엄 쇼클리 연구진이 실리콘(규소)과 게르마늄 등의 반도체를 세 겹으로 접합한 전자 회로 부품을 발명하여 트랜지스터라고 이름 붙였다. 트랜지스터는 전자제품의 소형화를 이끌었을 뿐 아니라, 전자 문명의 시대를 열었다. 1958년, 미국인 잭 킬비와 로버트 노이스가 실리콘 조각 위에 트랜지스터, 저항, 다이오드 등의 여러 소자(素子)를 배치한 집적회로(IC)를 개발했다. 실리콘은 온갖 물질에 들어 있어 지각(地殼)에서는 산소 다음으로 많은 원소다. 미국 전자산업의 중심지를 실리콘 밸리라고 하는 것도 실리콘이 전자부품들의 주재료이기 때문이다. 1965년, 한미 합작 기업인 코미전자산업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트랜지스터를 생산했다. 1974년에는 삼성반도체의 전신인 한국반도체㈜가 집적회로의 기초 재료인 웨이퍼, 즉 실리콘 기판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 후 40년 만에, 한국은 세계 제일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국이 되었다. 트랜지스터 1개가 1비트(bit), 8비트가 1바이트(byte)이니, 1메가바이트는 800만개의 트랜지스터다. 손톱보다 작은 실리콘 조각 위에 수백만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하는 기술 덕에, 전자제품은 집 안에 두는 물건에서 주머니에 넣는 물건이 되었다. 이 기술 탓에, 현대인은 타인과 눈을 맞추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전자제품에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는 인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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