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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가족 호칭 혁신 / 김하수

등록 2018-11-04 18:04수정 2018-11-04 19:18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가족 호칭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특히 여성과 관련된 몇 가지 호칭은 건강한 사회통합을 위해서라도 비판적으로 되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살펴보면 여성 호칭도 문제이지만, 여성이 사용하는 호칭도 문제이다. 왜 시동생을 ‘도련님’이라 해야 하느냐 하는 여성들의 불만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호칭 체계는 독립적 범주가 아니다.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와 연동됐다. 가부장제도의 철폐 내지 약화 없이는 해결 난망이다. 가부장 사회에서 외가는 한 세대가 지나면 사라진다. 어린 시절에는 이모, 외삼촌과 가까이 지냈지만 그다음 세대에겐 또 새로운 외가가 생기게 되니 어느 자녀가 할머니 쪽 친정에 관심을 가지겠는가? 호칭조차 마땅치 않다. 또 한 세대 지나면 아마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관계가 될 것이다.

세상은 달라지고 있다. 요즘은 처가, 즉 아이들 외가의 도움이 없으면 육아 전쟁을 견디지 못한다. 아이들도 과거보다 더 외가에 친숙하다. 자연스레 친정의 발언권도 점점 강해질 것이다. ‘도련님, 아주버님’ 같은 일부 호칭만 문제 삼지 말고 우리의 친족 호칭 전체를 재구성할 용기가 필요하다. 아버지 항렬은 모두 ‘큰아버지/작은아버지’로, 어머니 항렬은 모두 ‘큰어머니/작은어머니’로 간단히 하고, 같은 항렬에서는 이름에 붙여서 ‘아무개씨’ 정도로 과감하게 낡은 제도와 작별을 고할 준비를 해야 한다.

가부장적 친족 제도는 더 이상 미풍양속도 아니고 민법과 잘 어울리지도 않는다. 이제는 단출한 핵가족을 중심으로, 나머지는 ‘혈연을 나누었으나 독립적인 개인’의 합리적 관계로 만족해야 한다. 친족 내부의 ‘상부상조’와 ‘품앗이’는 사회보장과 복지 제도를 통해 해결하는 게 옳다. 그것이 미래의 우리 사회를 제대로 ‘통합’할 수 있는 문화 혁신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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