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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페인트

등록 2018-11-07 18:08수정 2018-11-08 09:42

전우용
역사학자

“산기슭에 작은 마을이 있는데, 진흙에 나뭇가지와 풀잎을 섞어 만든 곤충이나 새의 집들이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곳에서는 인간 행위의 예리함이 조금도 드러나지 않는다. 지붕과 담장에는 주변 자연경관과 확연히 구별되는 강렬한 색채도, 예각적인 선도 없다. 조선 농민들은 자기 바로 옆에 있는 풀을 뜯어 초가지붕을 만들고 바로 옆에 있는 흙을 긁어모아 담장을 세워서는 그 안에 들어가 산다.” 1943년 경성제국대학 교수 스즈키 에이타로가 쓴 <조선농촌사회답사기>의 한 구절이다.

일제강점기 절대다수의 일본 지식인은 한국인들이 염색하지 않은 옷을 입고 색칠하지 않은 집에서 사는 것은 문명의 혜택을 입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건조물의 선과 색을 통해 인간 스스로 자연과 대립하는 존재임을 표현하는 것이 문명이라고 보았다. 그들에게 자연과 잘 구별되지 않는 인공물은 ‘야만’의 증거일 뿐이었다. 이에 대해 한국의 몇몇 지식인은 한국인이 흰옷을 입는 것은 민족성이 순결하기 때문이며 집에 색칠하지 않는 것은 ‘자연미’를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거주 공간에 그림을 그리고 색칠하는 인류 문화는 구석기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삼국시대 고구려 고분 내벽에도 채색 그림들이 있다. 신라의 솔거가 황룡사 벽에 그린 소나무는 새들도 실물로 착각했다고 하는데, 이 역시 채색 그림이었을 터이다. 우리의 경우 건물 채색을 단청(丹靑)이라고 했는데, 조선시대 민가에는 단청이 허용되지 않았다. 궁궐이나 사찰 등 특별한 권위를 지닌 건물들에만 단청을 입힐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 합성수지를 사용한 페인트가 도입된 것은 서울과 개항장 도시들에 유럽식 건축물이 들어선 1880년대였다. 1910년대에는 관공서나 교회 건물에 페인트가 흔히 사용되었고, 1940년에는 조선도료유지주식회사가 설립되어 페인트 생산을 개시했다.

오늘날 한국 건축물들의 선은 자연의 선을 압도할 뿐 아니라, 그 색채도 자연의 색과 뚜렷이 대비된다. 페인트에는 ‘위장하다’라는 뜻도 있다. 순결과 자연미를 추구하던 한국인의 심성과 미의식마저 페인트칠이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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