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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확성기

등록 2018-11-14 17:36수정 2018-11-15 09:43

전우용
역사학자

기원전 490년,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군이 페르시아군을 물리치자 병사 페이디피데스는 아테네까지 40여㎞를 쉬지 않고 달려가 “기뻐하라. 우리가 이겼다”고 외치고는 그 자리에 쓰러져 숨을 거뒀다. 마라톤 경기의 유래에 관한 널리 알려진 전설이다. 페이디피데스가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낸 목소리는 얼마나 컸을까?

미국의 역사가 루이스 멈퍼드는 고대 도시의 크기가 사람 목소리의 도달 거리에 의해 결정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사람이 한복판에서 지른 소리가 겨우 들리는 지점들을 이어 성벽을 쌓았다는 것이다. 흔히 ‘천군만마를 호령하는 장수’라는 말을 쓰지만, 한 사람이 목소리만으로 천군만마를 지휘하기란 불가능하다. 군대에서 기(旗), 북, 징 등의 도구를 이용한 이유이다.

권력 구조란 명령의 전달 체계라고 해도 좋다. 옛날에는 소수의 사람에게 상세한 메시지를 시차를 두어 전달하는 방법도, 다수의 사람에게 간단한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하는 방법도 있었으나, 다수에게 상세한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할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최고 권력자가 말로 하는 명령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거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 권력 핵심이었다.

음성을 전기신호로 바꾸는 기기는 1827년 영국의 찰스 휘트스톤이 처음 고안했는데, 그는 여기에 작다는 뜻의 마이크로(micro)와 목소리라는 뜻의 폰(phone)을 합쳐 마이크로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기기가 실용화된 것은 1877년 미국의 토머스 에디슨과 에밀 벌리너에 의해서였다. 우리나라에 이 기기가 언제 처음 들어왔는지는 확실치 않은데, 1923년 경성부는 확성기를 이용하여 납세를 독려했고, 1927년에는 경성역 구내에 확성기가 설치되어 열차의 발착 시각을 알렸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의 농촌 주민들은 확성기를 통해 울려 나오는 새마을노래를 들으며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오늘날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수만명이 한 장소에서 동시에 들을 수 있는 것도 확성기 덕분이다. 그런데 현장의 청중이 열광하며 듣는 소리가 사람의 목소리일까, 기계의 소리일까? 현대인은 기계가 지배하는 시대가 올까봐 걱정하지만, 그 감수성이 기계에 동화한 지는 이미 오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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