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1팀 선임기자 1968년 12월5일 ‘대통령 박정희’의 이름으로 ‘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됐다. 헌장은 이듬해부터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 전 교과서 앞부분에 실렸고, 학생이나 교사 모두 무조건 외워야 하는 ‘경전’과도 같이 받들어졌다. 헌장 뒷부분에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라는 구절이 있다. ‘반공이 국시’임을 못박은 것이다. 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 9살 소년 이승복과 가족 등 4명이 북한 무장공작원들에게 살해됐다. 이른바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와중의 일이었다. 당시 이승복이 죽음 직전에 북한 무장공작원들 앞에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다는 일화가 전해지면서 이 일화는 국민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학교 교정에는 이승복 동상까지 잇따라 세워져, 이승복은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기 ‘반공’의 아이콘으로 떴다. 당시 초·중·고교와 대학까지 교과과정에 ‘반공도덕’과 ‘국민윤리’ 과목이 있었다. 국민윤리는 공무원시험 필수과목이기도 했다. 반공이 국시를 넘어 보편적인 도덕이고 국민윤리였던 시대다. 국민교육헌장은 박정희 정권이 무너진 뒤 1980년 이후 교과서에서 사라졌다. 이승복 일화와 동상도 1990년대 들어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이승복 일화를 전한 <조선일보> 기사의 오보 시비가 잇따르면서 교과서와 학교 교정에서 자취를 감춰갔다. 반공도덕과 국민윤리 과목도 없어졌다. 최근 울산에서 노옥희 교육감의 이승복 동상 철거 발언을 싸고 이념 논란이 불거졌다. 노 교육감이 시교육청 간부회의에서 “초등학교를 방문해보니 아직도 이승복 동상이 있었다. 이른 시일 안에 없앴으면 좋겠다”고 한 데 대해 일부 보수단체들이 “이념으로 몰고 가 동상 철거를 지시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노 교육감의 ‘진보’ 성향을 빗댄 것이다. 보수단체들 말대로 이승복 사건은 “순진무구한 외딴 산골 어린이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력행위로 규탄해” 마땅하다. 그리고 이 어린이와 가족이 살해되기까지 미리 막지 못하고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국가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당시 먼 남의 나라 베트남에까지 대규모로 전투병력을 파병한 나라가 정작 자기 국민은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책임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받기 힘들다. 하지만 당시 정권은 ‘순진무구한 외딴 산골 어린이’와 가족의 희생을 반공 이념교육의 소재로 활용하기에 바빴다.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은 외면한 채 국민의 관심을 북한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로 몰아가는 구실로 삼은 것이다. 이승복은 북한 공작원뿐 아니라 제 나라 정부로부터도 ‘희생양’이 됐다. “시대에 뒤떨어진 이념교육의 상징물을 철거해도 되지 않겠냐”는 주장과 “후세에 대한 교육사례로 계속 남겨둬야 한다”는 주장 가운데 어느 쪽이 이승복 동상을 이념으로 몰고 가는 것일까? 이승복이 무장한 북한 공작원들 앞에서 공산당이 싫다고 외쳤다는 일화도 사실 여부를 떠나 당시 정권의 반공 이념교육이 ‘순진무구한 외딴 산골 어린이’에게까지 얼마나 철저히 주입됐는지 되짚어보게 한다. 이런 일화가 후세들에게 여전히 교육사례로 유효할지도 의문이다. 이제 남북은 물론 북-미 간에도 잇단 정상회담과 교류를 통해 서로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핵과 전쟁이 없는 한반도, 평화와 공존, 화해와 협력을 향해 숨가쁘게 나아가는 시대다. 아직도 반공이 국시고 도덕이라는 관념을 벗어나지 않는 한 남북의 통일은 고사하고 평화조차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tms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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