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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겨레말큰사전 / 고명섭

등록 2018-11-21 17:33수정 2018-11-21 19:09

2009년 10월 개성에서 열린 제19차 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위원회 회의.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제공
2009년 10월 개성에서 열린 제19차 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위원회 회의.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제공
1896년 창간된 <독립신문>은 최초의 순한글 신문이다. 이 신문의 교정·교열을 본 이가 당시 배재학당 학생이던 주시경(1876~1914)이었다. 주시경은 38년의 짧은 생애를 국어 연구에 바쳤다. 주시경에게 국어 연구는 나라의 혼을 살리고 지키는 일이었다. 1908년에 쓴 글에 그 마음이 절절히 드러난다. “이때를 타고서 외국의 말과 글은 사나운 물결처럼 들어와 미약한 국성(國性, 나라의 기틀)은 전쟁에 진 싸움터의 고달픈 깃발처럼 움츠러지니, 가장 소중한 제 나라 말과 글을 이 지경에 두고 도외시하면 … 마침내 나라 힘의 회복은 바라지도 못할 것이다.” 주시경은 1911년 최초의 우리말 사전 <말모이> 편찬을 시작했으나 이른 죽음으로 끝을 보지 못했다. 주시경의 뜻을 이어받은 조선어학회는 1929년 <조선어사전> 편찬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1942년 일제의 탄압으로 회원 수십 명이 고초를 겪고 이윤재·한징은 옥사했다. 우리말을 지키려던 선각자들의 이런 노력은 해방 뒤 재개됐지만, 남북 분단으로 반쪽짜리가 되고 말았다. 분단은 우리 말과 글의 이질화를 심화시켰다.

지난 2월 평창겨울올림픽 개막식에 참가한 북한 대표단이 청와대에서 오찬을 할 때 남북 언어의 차이가 대화 소재가 됐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오징어와 낙지는 남북한이 정반대더라”라고 하자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그것부터 통일해야겠다”고 말해 웃음이 터졌다. 남북 언어의 통일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이 그런 노력을 상징한다. 이 사업의 출발은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평양을 방문한 문익환 목사가 ‘통일국어대사전’ 공동편찬을 제안했고 김일성 주석이 이 제안에 동의해 씨앗이 뿌려졌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화해 훈풍 속에 이 씨앗이 싹을 틔웠다. 2005년 남북이 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회를 결성해 2009년까지 20차례 공동편찬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아래서 이 사업은 부침을 거듭했고, 2016년 중단됐다. 지난달 겨레말큰사전 남북 관계자들이 평양에서 만나 올해 안에 편찬회의를 재개하기로 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은 우리 겨레의 말과 혼이 거주할 공동의 집을 짓는 일이다. 이 집이 완공되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란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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