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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국기게양대

등록 2018-11-21 18:18수정 2018-11-22 09:31

전우용
역사학자

의정부 종친부 등의 부(府), 홍문관 예문관 등의 관(館), 이조 병조 등의 조(曹), 승정원 훈련원 등의 원(院), 평시서 혜민서 등의 서(署), 비변사 준천사 등의 사(司), 제용감 전의감 등의 감(監), 선혜청 포도청 등의 청(廳), 내자시 내섬시 등의 시(寺). 조선시대 관청 이름들이다. 서로 다른 계보를 가진 관청들이어서, 이름만으로는 그 규모를 알기 어렵다. 여러 채의 건물을 가진 것도 있었고, 작은 건물 하나에 입주한 것도 있었다. 여러 건물로 구성된 관청일 경우, 중앙부에 특별히 크게 지은 건물이 본청이었다. 오늘날 관청과 민간시설을 막론하고 단일 시설에서 본청, 또는 본관임을 표시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국기게양대다.

우리나라 국기가 제정된 것은 조선시대인 1883년의 일이었으나, 국기를 ‘충군애국(忠君愛國)하는 마음’을 고취하기 위한 상징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1897년 대한제국 선포 이후였다. 이 무렵부터 각 관청과 상점 등은 국경일에 국기를 게양했으나, 관청 정문 옆에 국기게양대를 설치하고 상시 게양하는 관행은 일제 강점 전후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일전쟁 1년 전인 1936년 5월, 조선총독부는 직장과 마을마다 국기게양대를 설치하고 국기게양대 앞을 ‘천황폐하의 어전’과 같이 대하라고 지시했다. 1939년 1월26일 새벽, 충북 청주군 사주면 사창리에 거주하던 72살 노인 이원하의 시체가 마을 국기게양대 앞에서 발견됐다. 총독부는 중병에 걸려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그가 간병하는 부인이 잠시 조는 틈에 국기게양대 앞까지 걸어와 일본 왕이 있는 동쪽을 향해 절한 뒤 바로 숨을 거뒀다고 발표했다. 곧바로 조선 전역에서 ‘애국노인 이원하’ 본받기 운동이 벌어졌고, 여러 학교에 그의 동상이 섰다. 이 서사와 추모 방식은 후일 ‘반공소년 이승복’에게 이어졌다.

오늘날 국기게양대는 관청, 기업, 학교 등 단위 시설들마다 있지만, 그 앞을 ‘어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국기를 올리고 내리는 사람이 아니면 특별한 행사 때에나 잠시 주목하고 마는 물건일 뿐이다. 투표일에만 주목받고 평시에는 존재감조차 없는 대의민주주의 시대 주권자와 참 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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