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오늘날 리투아니아의 영토가 된 러시아 제국의 땅에서 유대인 소녀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엄하고 완고했지만 저항적인 딸은 순종하지 않았다. 유대인 여자에겐 교육이 필요 없다던 아버지 밑에서 독학을 했던 딸 엠마 골드만은 니콜라이 체르니솁스키의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매료되어 여주인공 베라 파블로브나를 본뜬 삶을 살겠다며 한평생을 그 책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부모의 억압과 가난을 피해 미국 이민을 결심한 골드만은 봉제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시카고의 헤이마켓 광장에서 일어난 사건을 알게 되었다. 노동운동을 하던 무정부주의자들이 단지 테러의 혐의만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되었다는 소식은 골드만의 반체제적인 아나키즘의 정치 철학을 강화시켰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독자적인 신념에 따라 행동한 것이었지 다른 누구의 노선을 따르지는 않았다.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었던 급진주의 지도자 요한 모스트는 그가 자신의 앵무새가 되기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나와 함께 있지 않은 자는 나에 반대하는 자”라고 격노했지만, 결국 골드만은 그를 떠났다. 임금 인상을 위한 파업을 와해시키려던 공장 경영자의 살해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죄와 벌>의 등장인물 소냐를 떠올리며 매춘을 실행에 옮기려 했다. 징병에 반대하여 수감된 뒤 결국 소련으로 추방되었지만 그곳에서도 개별적인 목소리를 억압하는 체제에 환멸을 느꼈을 뿐이다. 자신의 주장에 반대하던 또 다른 아나키스트 볼테린 드 클레어의 견해를 존중하여 그의 전기를 집필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골드만의 특성이다. 박열 의사와 함께 일왕의 암살을 기도했던 일본인 아내인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가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게 되었다. 아나키즘에는 고정된 주의가 없다고 주장했던 점에서 골드만보다는 볼테린 드 클레어에 더 가까웠던 가네코가 감옥에서 사망한 지 92년 만의 일이다. 환영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