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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연철 칼럼] 거짓말, 합의, 그리고 통일교육

등록 2018-11-25 17:58수정 2018-11-26 09:30

김연철
통일연구원 원장

학교의 통일교육이 중요하다. 모범적인 평화국가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갈등 해결의 경험을 길러주고, 상호 이해의 기회를 제공한다. 차이를 인정하는 관용의 습관이 폭력을 예방하고 평화의 문화를 낳는다. 과연 학교교육 없이 시민교육이 가능하겠는가? 소통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가짜 뉴스는 힘을 쓸 수 없다.

“당신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어요. 도대체 품위라는 것이 있습니까? 더 이상 당신을 상대하지 않겠소.” 1954년 미국 육군의 법률 고문인 조지프 웰치가 매카시 상원의원에게 이렇게 말하고 회의장을 걸어나갔다. 그 순간 품위가 거짓말을 이겼다. 생중계의 효과는 컸고, 매카시즘은 그렇게 몰락했다. 요즘 가짜 뉴스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언제나 거짓말은 단순하고 빠르지만, 진실은 복잡하고 느리다. 거짓말로 거짓말을 상대할 수는 없지만, 사실이 언제나 거짓말을 이길 수도 없다. 품위라면 모를까. 과연 지금 시대에도 품위가 거짓말을 이길 수 있을까?

거짓말은 분열의 불씨고, 합의를 방해한다. 세계적으로 합의의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의사소통의 조건을 변화시키고, 대중은 정치를 경멸하고 제도를 불신하며 쉽게 흥분한다. 분열의 토양에서 포퓰리즘이 등장했다. 미국에서, 유럽에서, 혹은 남미에서 포퓰리즘은 스쳐가는 바람이 아니라, 세계적 현상으로 퍼졌다. 민주주의의 부족한 점을 보완했던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의 문화가 사라지면서,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시민들의 연대로 극복했다. 그러나 연대는 불안하고, 분열과 적대의 불씨가 널려 있다. 특히 남북정상회담 이후 ‘우리 안의 분단’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해결 국면에서는 숨지만 교착 국면이 되면 어김없이 ‘분열과 적대의 거짓말’이 틈을 파고든다. 남북관계와 관련된 대부분의 가짜 뉴스는 새롭지 않다. 아주 오래전부터 거짓말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사람들은 합의를 바라지 않는다.

교착이 길어지면 합의는 더욱 어려워진다. 국내 합의가 협상의 지속성을 결정하기 때문에, 합의가 어려워지면 협상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풀기 어려운 협상일수록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북한과 미국의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에, 협상은 자주 서고 이따금씩 전진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누구도 악화를 원하지 않는다. 북한도 미국도 상황을 악화시켜 얻을 이익이 없고, 선제적으로 상황을 악화시킬 명분도 없다.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전진하는 남북관계가 후진 방지 구실을 할 것이다.

교착 국면에서 합의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정말 중요하다. 사회적 합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다만 지금 시점에서 ‘합의’의 의미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소통의 방식이 급격히 변했는데, 여전히 합의의 방법은 너무 낡았다. 방송사들은 여전히 기계적 중립을 핑계로 양극단의 사람들을 불러서 ‘듣지 않는 대화’를 중계한다. 합의가 아니라 분열을 증폭할 필요가 있을까? 초당적 협력의 제도는 넘쳐나지만,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를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대표의 위기를 겪는 현재의 상황에서 과연 단체들의 협약은 가능할까? ‘헌 부대에 새 술을 붓는 사람은 쓴맛을 보리라.’ 합의의 방법을 바꿀 때가 왔다.

합의를 하려면 먼저 대화해야 한다. 상대의 말을 듣지 않으면, 다시 말해 대화가 불가능하면 합의할 수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모두의 합의는 불가능하다. 모두의 합의는 알고 보면 독재의 유산이다. 민주주의는 차이를 인정하고 협력을 추구한다. 토론이 가능한 사람들의 합의를 넓히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넓고 유연한 연대를 튼튼히 해야 한다. 연대가 유지되면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지만, 분열하면 포퓰리즘이 등장한다.

합의의 토양을 바꿔야 한다. ‘팩트 체크’나 법률적 대응으로 가짜 뉴스를 막을 수 없다. 다수 시민의 생각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기에, 좀 더 길고 더욱 넓게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킬 방안을 생각할 때다. 그래서 학교의 통일교육이 중요하다. 모범적인 평화국가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갈등 해결의 경험을 길러주고, 상호 이해의 기회를 제공한다. 차이를 인정하는 관용의 습관이 폭력을 예방하고 평화의 문화를 낳는다. 과연 학교교육 없이 시민교육이 가능하겠는가? 소통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가짜 뉴스는 힘을 쓸 수 없다.

통일은 폭력이 아니고, 분열과 혐오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이해가 통일교육에서 가장 중요하다.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관용하는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결국 통일의 의미고 방법이며 동력이고 목표다. 어려운 환경에서 전진하기 위해서는 한-미 관계에서 소통하고 우리 안에서 연대해서 합의를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좀 더 장기적인 시각에서 ‘우리 안의 분단’을 극복할 ‘지금 여기에서의 통일’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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