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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03 16:45 수정 : 2005.02.03 16:45

대한생명 매각에 대해 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대각심사소위 위원을 맡았던 김주영 변호사가 대한생명 매각은 국민의 혈세를 부당하게 부담시킨 부실매각이라고 지적하는 장문의 기고를 <인터넷한겨레> 에 보내왔다. [편집자]

아무 것도 모른 채 혈세 부담만 뒤집어 쓰는 국민만 불쌍
재경부의 근친상간이 문제 발생과 진실 은폐의 결정적 원인

이제 진실을 말할 때…

나는 한화가 대생인수를 위해 외국보험사로부터 명의만 빌렸고, 전윤철 당시 재경부장관 (현재 감사원장)에게 15억원의 국민주택채권을 제공하려다가 거절당했다는 놀라운 뉴스를 접하면서 이제는 입을 열어 그 당시의 진상, 즉 내가 공자위 매각소위 위원으로서 대생매각건을 심사할 당시의 상황을 좀 더 상세히 밝혀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물론 지난 국감때 증인으로 출석하여 대생매각과 관련한 문제점을 증언한 바 있고 얼마전에는 대검 중수부에서 참고인 조사도 받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진술한 내용은 내가 경험했던 광범위한 내용의 극히 일부분이다. 더구나 이들 내용 중 일반국민들에게 알려진 사실은 더 더욱 극히 일부이다. 대생매각과 관련한 모랄해저드는 생각보다 그 뿌리가 깊고 광범위하다. 나는 대생매각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재경부, 예금보험공사, 금융감독원, 주거래은행, 회계법인, 정치권, 언론 등 우리사회 주요 조직들에 자리 잡은 소위 지도층이거나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부정직하거나 비겁한 모습들을 지켜 보았다. 세상이 많이 바뀌고 또 투명해 졌다고 하지만 정말로 대규모의 이권이 있을 경우 기존의 감시견제장치들은 그야말로 종이 호랑이로 전락되고 만다. 왜 그럴까? 다름아니라 그러한 감시견제장치들을 작동시키는 사람들의 도덕불감증 때문이다. 아니 공공의 이익보다는 그들이 속한 거대한 특수집단의 이익을 우선하는 뿌리 깊은 관행때문이다.


관련 지식인들의 광범위한 도덕적 해이

나는 아직도 매각심사소위가 본격적인 심사를 시작하자 마자 불필요한 일을 한다고 언론에 불만을 토로하던 고위관료, 심사를 중단하고 대생을 빨리 한화에 넘기라고 주장하던 한 유력 경제신문의 논설, 대한생명에 공적자금 1조 5천억원을 추가로 투입하지 않으면 마치 큰 일 날 것처럼 허위보고했던 예보관계자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을 의견서를 통해 뒷받침해 주했던 각종 전문가들, 한화그룹이 만들어 준 자료를 가지고 마치 자신들이 작성한 자료인 양 제시했던 주거래은행 임원, 매각소위 위원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무시하고 끝내 자신들이 왜곡하여 작성한 보고서를 본회의에 올렸던 관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결국 이들의 도덕불감증에 따른 피해는 아무 것도 모르는 국민들에게 고스란이 돌아가게 된다.

무려 3조 5천 5백억원의 국민 혈세가 투입

대한생명에는 무려 3조 5천 5백억원이라는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되었다. 즉 대생과 관련하여 국민들이 부담한 혈세는 갓난아이까지 포함한 4,700만 국민들 1인당 7만원이 넘는 금액이다. 첫째 의문점은 과연 대한생명에 무려 3조 5천 5백억원이나 되는 공적자금을 투입할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돈은 이 3조 5천 5백억원 중에서도 대생의 매각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던 2001년 9월에 추가로 투입되었던 1조 5천억원이다. 당시 정부, 예보 그리고 그들이 확보하여 제출한 회계법인의 의견서 그리고 보험개발원의 의견서 등 여러가지 참고자료와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본회의의 선행 결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지만 매각소위는 순진하게도 정부와 예보가 제시한 자료만 믿고 무려 1조 5천억원이라는 돈을 추가로 투입하는 결정을 내렸고 나는 이 결정에 참여한 것을 지금 대단히 후회하고 있다.

공적자금 1조 5천억원의 투입은 정말 필요했나?

팔려고 내 놓은 집에 집 한 채 값에 해당하는 막대한 돈을 들여 수리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과연 수리비만큼을 더 받을 수 있을지, 원매자가 수리한 것을 마음에 들어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이치로 이미 매각이 결정되어 매각절차가 진행중인 기업에 1조 5천억원이 넘는 돈을 증자 방식으로 쏟아 붓는 일은 더 더욱 희귀한 일이다. 기업을 인수할 사람이 회사의 적정자본금 규모를 어떻게 가져가려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감자를 먼저 원할 수도 있고, 증자를 원할 수도 있으며 어떤 형태로 언제 증자를 할지도 인수자에 따라 원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 따라서 당장의 유동성 위기가 없는 한 매각작업이 개시되어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따라서 추가적인 공적자금 1조 5천억원을 투입할 것인가를 심의할 당시 위원들이 던진 질문은, 왜 굳이 팔려고 내 놓은 회사에 1조 5천억원이나 되는 돈을 투입하는가?, 나중에 인수자가 결정되고 그 때 인수자가 원하는 경우 공동출자를 하던지 하면 되지 않는가? 하는 것들이었다.

그러자 당시 공자위사무국과 예보는 각종 자료와 수치를 내어 놓으며 공적자금을 추가로 투입하지 않으면 대한생명에 “마치 큰 일이나 날 것처럼” 보고를 했고, 더 나아가 1조 5천억원을 투입하면 훨씬 더 좋은 조건으로 팔 수 있을 것처럼 (다시 말해서 추가로 투입한 1조 5천억원 이상의 가격상승효과를 낼 것으로) 설명했다. 부연 설명하면, 공적자금을 추가 투입하지 않을 경우 조기정상화가 지연되고, 영업력이 저하되며, 매각가치가 하락하며, 법인시장이 위축되는 등 각종 부작용을 겪는 반면, 조기에 공적자금을 출자하면 정상화가 조기에 이루어지고 매각방식의 선택 다양화를 확보할 수 있으므로 매각이 원활화된다고 설명했다.

가장 결정적인 자료는 공적자금 추가투입시와 미투입시를 비교한 예상수지현황이었다. 당시 예금보험공사가 작성한 참고자료에는 1조 5천억원의 공적자금을 추가로 투입하지 않으면 2001 회계연도에 917억원의 적자를 내고 2002년도에는 45억원의 미미한 흑자를 내고, 1조 5천억원을 추가 투입하더라도 2001년도에 65억원의 미미한 흑자를 내고, 2002년도에는 1,203억원의 흑자를 내는 것으로 제시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이라고 하는 회계법인과 보험개발원에서 각각 작성한 의견서에도 공적자금의 조기투입이 매각에 유리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후 2001. 8. 7. 공자위 본회의에 보고된 수치는 공적자금 1조 5천억원을 투입해도 2001년도에 314억원의 적자를 내는 것으로 되어 있는 등 더욱 비관적인 전망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실상은 어떠했을까? 공적자금은 2001 회계연도의 중간 시점인 2001년 9월 (대한생명은 3월말 결산법인임)쯤에 투입되었는데 후속적인 매각절차에서 드러난 사실은 2001년도 순이익이 무려 8,684억원에 달한다는 것이었다. 불과 몇 달전에 공적자금 1조 5천억원을 투입하기로 할 때는 이 돈을 투입해야 겨우 65억원의 흑자를 내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자그만치 8,684억원의 흑자라니…. 공적자금투입결정을 유도하기 위해서 일부러 대한생명의 경영실태를 나쁘게 왜곡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서는 이런 천문학적인 차이가 날 수는 없는 법이다. 더구나 대한생명이 그 이듬해인 2002 회계연도에 올린 순이익은 2001년도보다도 많은 무려 9,794억원으로서 1조원에 육박하는 수치이다. 이 수치 역시 당초 예보가 공적자금투입시 나타날 것으로 예측했던 2002년 예상 당기순이익 1, 203억원과는 엄청나게 차이나는 수치이다.


* 결국 최근 3년간 예보 전망치와 실제 수치간의 차이를 합산해 보면 무려 2조 666억원에 달함.

어떻게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어떻게 해서 당장 1조에 육박하는 당기순이익이 2년 연속 날 정도로 영업상황이 호전된 회사에 국민의 혈세를 1조 5천억원이나 투입할 수 있다는 말인가?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자본금을 늘리는 것에 불과할 뿐 손익을 직접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2001년 9월에 투입된 1조 5천억원 때문에 2001 회계연도 당기순이익이 8,684억원으로 급증했다고는 볼 수 없다 (물론 차입금을 갚아 이자비용이 줄어들거나 재무건전성이 높아져 매출이 다소 늘어날 수는 있지만 이러한 효과 역시 대부분 중장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2001년 9월에 대한생명에 1조 5천억원이라는 거액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것은 당시 대한생명의 실상에 비추어 볼 때는 그 자체로도 수긍할 수 없는 일이었고 더 더구나 매각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사정을 감안할 때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수자에게 1조 5천억원의 현금을 얹어 준 것에 해당

그리고 결과적으로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의문은 어떻게 이렇게 1조 5천억원이나 추가투입한 결과 순이익이 매년 8-9천억원씩 나는 회사의 지배지분 (51% 지분)이 불과 8,236억원 (그것도 대수대금의 절반은 2년후에 지불하는 조건으로)에 팔릴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당시 특정인에 팔릴 것이 이미 내정된 상태에서 그 특정인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서 공적자금을 투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왜곡된 자료와 전문가 의견서들을 들이대면서 이례적으로 매각과정 중간에 1조 5천억원이라는 거금을 투입했을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나타난 상황을 근거로 한 번 되짚어 보면 이렇다. 한화그룹은 대생의 기업가치를 1조 6천억원 정도로 평가하여 51%지분을 8천억원 정도에 샀다 (그것도 나중에 가치를 각종 문제를 잠재우기 위해 기업가치를 재평가해서 그리 된 것이고 당초에는 7천억원정도로 평가했었다). 만약 몇 개월전 투입된 1조 5천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지 않았을 경우 똑 같은 방식으로 가치평가를 했다면 한화그룹은 대생의 가치를 “0”이거나 “마이너스 (-)“로 평가하였을 것이고 절반의 지분을 거의 공짜로 매수하려 하였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즉 공적자금 1조 5천억원의 투입을 미루고 대신 거의 공짜로 파는 방식을 선택했었다면) 정부가 아무리 한화그룹에 팔고 싶더라도 국회나 국민을 설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며 공자위에서도 쉽사리 매각을 승인해 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었다고는 하지만 3대 생보사 중 하나이고, 공적자금 2조 5백억원이 투입된 이후 영업이 급속도로 호전되는 회사를 공짜로 사도록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당연히 특정인에게 헐 값에 매각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매각전에 공적자금을 더 많이 투입해서 상당한 매각가격이 지불되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한생명을 1조 6천억원에 평가하여 매각한다는 것과 대가 없이 넘긴다는 것은 느낌이 전혀 다를 수 밖에 없다. 공짜로 또는 돈을 보태 주면서 팔자니 특혜, 헐값 의혹이 일어날 것이 뻔하기 때문에 팔기 몇 달 전에 1조 5천억원을 투입한 후 그 직후 1조 6천억원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한 후 그 절반의 지분을 8천억원에 (그것도 절반인 4천억원은 2년 후 지불조건으로) 팔은 것이다.

“추가지원이 없을 경우 손실누적으로 인한 순자산부족현상의 장기화로 조기정상화에 차질이 발생할 우려가 있음. 매년 1,500억원의 이차손 발생이 불기피한 상황으로 향후 수년간 당기이익 실현이 요원하여 누적손의 규모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음.” 당시 예금보험공사가 매각소위에 제출했던 자료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이런 설명을 곧이 곧대로 믿고 1조 5천억원 투입결정에 손을 들어 준 당시 위원들은 너무도 순진했던 셈이다.

입찰에 참여했다가 중도포기한 메트라이프

대한생명에 공적자금 1조 5천억원을 추가로 투입하는 결정을 내린 후 2001년 7월 말경에 매각소위는 대한생명 매각의 개략적인 조건들을 정했다. 이 중 현재 문제가 되는 소위 보험사요건이라는 것이 결정되었다. 즉 “민영화를 통한 대한생명의 조속한 정상화를 위해, 투자자의 자격을 원칙적으로 국내외 보험사 또는 보험사가 포함된 컨소시움을 대상으로 함”이라는 조건이 붙은 것이다.

그 후 한동안 대한생명 매각과 관련한 안건들은 매각소위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다. 매각주간사로 메릴린치와 외환은행을 선정한 바 있으므로 이제 매각주간사가 입찰절차를 준비하고 진행하도록 맡겨두기만 하는 단계였다. 메릴린치는 2001년 9월에 투자안내서를 보내고, 10월에는 잠재투자자의 인수의향서를 접수하였으며 잠재투자자 (한화, 메트라이프)들은 10월부터 11월에 걸쳐 실사를 하는 등 매각절차가 차근 차근 진행되었으며 결국 2001년 12월 14일에는 한화와 메트라이프 양 쪽으로부터 투자제안서 (입찰서)를 접수하게 된다.

대한생명매각과 관련하여 입찰서가 접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매각소위에 안건은 상정되지 않았고 그 후 예보와 매각주간사는 수정입찰을 받는 방식으로 사실상 입찰자인 메트라이프 및 한화측과 실질적인 협상을 시작해 버렸다. 입찰 이후 처음으로 대한생명건을 보고받은 것은 2002년 2월 19일의 일인데 이 때 매각주간사는 이미 양 쪽으로 부터 한 차례씩의 수정입찰을 받는 등 사실상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2002년 3월 19일에 다시 매각상황을 보고할 때는 당초 입찰서를 냈던 메트라이프는 사실상 입찰을 철회한 상황이었다. 다름 아니라 감독당국 (금감위) 및 예금보험공사가 메트라이프가 제안한 거래구조 (대한생명의 기존계약부분을 별도 사업부로 분리한 후 이에 대하여 지급여력비율 등을 차등적으로 적용하도록 하는 조건의 거래구조)를 불가하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메트라이프가 제안한 거래구조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가격조건에 관해서 충분한 설명을 듣거나 입찰서 자체를 검토하지는 못했지만 감독당국이 법규상 불가하다고 하였고 그러자 메트라이프가 입찰절차에서 철수하는 공식결정을 하였으므로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매각심사소위가 우선협상자 지정건을 심의하기도 전에 이미 이번 입찰은 복수입찰에서 한화컨소시움 단독입찰로 변경되어 있었다.

마냥 늦어지는 의안상정

여하튼 2002년 3월 20일 메트라이프가 공식적으로 인수의향을 철회한 후 대생매각입찰은 한화컨소시움의 독무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화컨소시움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할지 여부는 위원회에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았다. 아니 여러 번 “대한생명 매각관련 우선협상대상자 지정건”을 상정한다고 통보를 하였으나 실제로 회의장에 가보면 아직 상정할 준비가 않 되어 있다고 했다. 그 때는 별 의심을 하지 않았으나 계속해서 신문지상에 한화그룹의 대한생명인수가 기정사실처럼 보도가 되고 예금보험공사와 한화간에 가격협상이 진행중인 것으로 나오자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매각소위의 우선협상대상자선정안이 상정되기도 전에 가격협상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왜 번번히 의안을 상정한다고 하였다가 다시 번복하는 절차가 반복되는 것일까?

공자위나 매각소위는 상설위원회가 아니고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지 않는다. 사무국에서 심의할 안건이 있다고 해서 소집을 하면 열리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재경부 직원들로 구성되어 있는 공자위 사무국이 의안을 상정하지 않는 한 의안을 심의할 수 없다. 물론 공자위나 매각소위가 심의할 사항으로 되어 있는 사항들이 있으므로 언제까지나 심의를 미룰 수는 없지만 언제 심의할지는 사무국이 통제한다.

대생입찰이 종료된 이후에만 해도 2002년 1월 23일, 2월 8일, 2월 19일, 3월 14일, 3월 19일, 4월 2일, 4월 4일 등 7 차례에나 걸쳐서 매각소위가 개최되었다 하지만 그 중 단순 보고형식으로 두 차례정도 대한생명매각상황이 브리핑되었을 뿐이고 대한생명의 인수우선협상대상자 지정건은 상정되지 않았다. 왜 안건상정이 지연되었을까?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다음 두 가지 이유가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한화그룹의 대규모 분식회계사실 적발

우선, 2002년 초부터 계속 조사가 진행중이다가 3월 중순께 최종 발표되었던 한화그룹분식회계건이 의안산정을 미루게 한 결정적 이유가 아닐까 싶다. 한화그룹에 속한 ㈜한화, 한화석유화학, 한화유통이 약 8천억원 규모의 대규모 회계분식을 한 것으로 발표된 것은 2002년 3월 14일이었다. 이를 위한 회계감리는 그 이전부터 이루어졌을 것이므로 한화그룹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심의 중간에 대규모 분식회계 적발이라는 악재를 맞게 될 상황이었다.

분식회계는 한화그룹이 입찰시에 제출했던 각종의 재무정보가 진실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화컨소시움의 도덕성에 먹칠을 하는 대형 악재였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한화컨소시움의 입찰에 대한 매각소위의 심의가 이루어지는 중간에 이러한 분식회계사실이 발표된다면 한화측이 입을 피해는 회복불가능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한화측이 분식회계적발발표가 있을 것을 예상하고 이에 따라 미리 입찰서류를 수정하고 분식적발에 따른 부정적 여론 등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정부 및 대언론작업을 하는 등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실제로 한화그룹의 분식회계와 관련하여 증선위는 관련 회계법인은 중징계하였지만 막상 당사자인 한화그룹에 대해서는 경과실로 인정하여 비교적 가벼운 제재조치를 취했으며 당시 금감위 위원장은 한화그룹의 분식회계가 대생인수에 별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미리 두둔하기까지 하였다 (추후 안 바에 따르면 당시 증권선물위원회 민간위원과 정부위원간에 한화그룹의 중과실내지 고의성에 대해서 심한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대한생명 안건이 상정된 2002년 4월 8일경 매각소위가 언론보도에 의존하여 분식회계건을 접했을 때의 분위기는 한화그룹의 분식회계는 별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우선 각종 언론들이 이번 분식을 매우 기술적인 문제 또는 회계처리와 관련한 감독당국과 기업간의 인식의 차이로 보는 듯 해 보였기 때문이다.

둘째, 정부나 예보 그리고 매각주간사는 매각소위의 심의과정이 만만치 않으리라고 예상했던 것 같다. 4인의 민간위원들만으로 구성된 매각소위는 그 이전의 사안에서도 상당히 깐깐한 태도를 보여 정부와 몇 차례 마찰을 빚은 바 있다. 따라서 정부는 최대한 안건 상정을 미루면서 한화측의 조건을 상향조정한 후 막판에 의안상정을 한 후 전격적으로 의안을 처리하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정부측 입장에서 안건상정을 무한정 미룰 수는 없었는데 이는 이미 언론등에서 한화의 대생인수를 기정사실화하는 보도가 나오면서 의안상정압력을 피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2001년 회계연도가 종료되면 (2001년 3월말) 2001년도의 9천억원에 가까운 흑자발생사실이 대생의 매각작업을 좀 더 복잡하게 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2002년 4월 8일 드디어 심의에 착수

한화컨소시움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정여부가 본격적인 논의대상이 된 것은 2002년 4월 8일경이다. 이 때도 정식 의안상정은 아니고 보고형식을 빌었지만 매각소위 위원들은 신속하게 이 안건의 심의에 착수했다. 의안상정은 늦출대로 늦춘 상태였지만 사무국에서는 신속한 처리를 요청하는 상황이었다. 괘씸했지만 할 수 없지 않은가? 4월 8일 회의에서 위원들은 예보측으로부터 그간의 진행경과를 보고받은 한화측이 제시한 인수가격의 적정성과 한화컨소시움의 인수자로서의 적정성을 검토하여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여부를 결정해 줄 것을 요청받았다.

이러한 매각건을 심의함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심의해야 할 사항은 늘 별반 다르지 않다. 첫째, 매각대상물이 어떠한 상황이고 따라서 어느정도 가치가 있는지, 둘째 매수희망자가 어떤 업체이고 자금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셋째, 매수희망자가 제시한 조건은 적정한지이다. 의안이 상정된 후 매각소위에서는 매우 촘촘하게 심의일정을 짠 후 심의를 진행하였는데, 4월 8일의 제26차 회의, 4월 10일의 제27차 회의, 4월 23일의 제28차, 4월 29일의 제29차 회의에 이르기까지 약 4차례의 회의를 가지면서 대한생명의 상황, 한화컨소시움의 현황 및 그 적격성, 거래조건의 적정성에 대한 심의를 진행했다.

들여다 보면 볼수록 드러나는 문제점들

그런데 한화컨소시움에 대한 심사를 하면서 들여다 보면 들여다 볼수록 갖 가지 문제점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한화그룹이 IMF를 겪으면서 혹독한 구조조정을 통해 부채비율을 낮추는 등 재기에 성공한 모범적인 그룹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분식회계건도 회계처리방법에 대한 견해차이에서 비롯된 기술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구체적인 자료를 보자 나의 이러한 이해가 피상적이었음이 드러났다. 우선 우리는 한화컨소시움의 대생 인수 및 경영능력을 들여다 보기 위해서 한화그룹의 재무상황에 관한 자료를 받아 보았는데, 한화그룹은 자료가 제출된 최근 10년간 (1992년부터 2001년까지) 단 한 차례도 순익을 내어 본 적이 없었으며 (금융사 제외, 금융사 포함해도 흑자는 2000년 단 한 차례), 가장 최근연도인 2001년도에 사상 최대의 적자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인수의 주체가 되는 회사들도 모두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어 과연 충분한 출자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구조조정이 성공적이려면 이익을 내야 하는데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 만큼 구조조정이 피상적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분식회계도 그렇다. 분식회계의 규모는 무려 8,078억원으로서 절대적인 규모 뿐만 아니라 관련사들이 이로 말미암아 적자를 면하고 흑자로 보여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분식이 틀림 없었다. 그리고 그 수법도 계열사의 지분을 주로 연말에 집중적으로 취득한 후 취득가액과 장부가액의 차이를 부의 영업권으로 일시 계상하는 수법이어서 다분이 의도적으로 보였다. 게다가 한화그룹이 대주주로 있던 한화종금 및 충청은행에 공적자금이 3조가량 투입한 것 역시 책임을 다했거나 대주주로서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책임이 없다고 금융감독위원회가 인정해 준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이 역시 납득할 수 없었다. 보험업법에는 소위 주요출자자요건이라는 것이 있다. 즉 보험회사를 설립하기 위해서는 대주주가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이 요건을 말한다. 매각소위에서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보험사를 인수하려는 자가 있을 경우 적어도 보험업법상 보험업 신규허가시 요구되는 주요출자자 요건정도는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화그룹의 경우 이 주요출자자요건의 여러 가지에 저촉되는 사실이 드러났다. 우선 부채비율 200%미만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고, 투자자금이 차입금이 아니어야 한다는 요건을 충족하는지 불명확했고, 분식회계는 증권관련법규위반이므로 이 역시 결격사유였다. 그리고 과거 부실금융기관의 대주주였다는 사정은 아무러 금감위가 그 책임을 면제하거나 부담한 것으로 간주한다 하더라도 이미 부실유발이라는 역사적 사실 자체는 없앨 수가 없었다. 한화나 주거래은행은 물론 금감위 조차 보험업법상 대주주요건은 신규설립시에나 요구되는 것이지 지분인수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보험업 신규허가도 받을 적격이 안 되는 자에게 공적자금이 투입된 보험사의 대주주자격을 허용한다는 것은 넌센스였으며 금감위나 한화측의 변명은 공허했다.

미리 각본을 다 짜 놓았나?

매각소위에서는 3월부터 4월에 걸쳐 대한생명 대표이사, 한화그룹의 구조본 관계자, 한화의 주거래은행인 한빛은행 부행장, 회계법인 관계자, 금감원 전문위원, 금감위 보험감독과장, 주간사 관계자 등 대한생명과 한화컨소시움과 관련한 사항을 참고진술할 참고인들을 불러 의견을 청취하였다. 그런데 사전에 각본을 짜 놓았는지 종종 우스꽝스런 장면이 연출되곤 했다. 예를 들자면 한화그룹의 자금여력을 판단하기 위해서 주거래은행 부행장을 불러 의견을 들었는데 부행장이 설명하고자 준비해 왔다고 하는 자료가 영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은행에서 객관적으로 작성했다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허술한 형식으로 되어 있어 어떻게 은행에서 이런 자료를 가지고 설명할 수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러자 부행장은 창피했는지 사실은 그 자료가 자신들이 준비한 자료가 아니라 한화측이 준비해 준 자료라고 변명했다.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이 황당해서 크게 분개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한화측에 불리할 수 있는 자료들은 충분히 제공되지 않았는데 예컨대 99년도에 한화그룹이 인수를 시도했으나 어떠한 이유로 입찰에서 탈락했는지, 그 때 제시한 조건은 어떠했는지에 관해서는 사무국에서 충분한 자료가 제 때에 제출되지 않았다.

반대기류가 뚜렷해지자 압박작전과 언론공세가 시작

약 4-5차례에 걸친 심리를 거치는 동안 위원들 사이에서 한화측의 인수능력이나 인수조건의 적정성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인 입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공적자금이 3조 5천 5백억원이나 투입되어 정상화된 보험사를 인수능력이나 자격이 의심되는 한화컨소시움에 서둘러 팔 수는 없다는 기류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한화측은 대한생명의 기업가치를 약 7천억원으로 평가했고, 매각주간사는 1조 2천억원으로 평가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가격도 매각소위 위원들이 납득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불과 몇 달전에 1조 5천억원을 추가출자했으며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9천억원에 육박하는데 너무 헐값으로 보였다. 더구나 매각주간사가 적용한 15%의 할인율에도 많은 의문이 제기 되었다. 그러자 심사 개시 후 약 한 달쯤 지난 5월 중순경부터 언론을 동원한 압박작전이 시작되었다. 당시 재경부장관은 매각소위의 심사를 염두에 두었는지 “자격보다는 가격이 문제다”라고 발언한 것으로 보도되었으며 유력 경제지에서는 “매각소위가 입씨름만 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기사가 보도되었다. 심지어 이 신문은 사설로 대생매각이 미룰 일 아니다라는 노골적인 논조를 펴기도 했다. 매각소위의 심의과정은 철저히 비공개로 하고 있었으나 언론은 심의과정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며 정부관계자를 인용하여 매각소위의 활동을 비판하고 있었다. 그래서 매각소위 위원들을 대표해서 내가 언론에 보도자료를 내서 매각지연비판에 대한 반박을 하기도 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한 번은 내가 잘 아는 중앙일간지 기자가 청와대의 한 비서관이 매각소위 위원들을 비판하는 기사를 써 달라고 부탁해 왔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여러가지 상황에 비추어 정부는 이미 한화에의 매각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으며 한화의 인수자격을 따지면서 꼼꼼히 문제삼는 매각소위를 못 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하지만 언론을 통한 압박도 매각소위 위원들 대다수의 판단을 돌리는데 성공하지 못했고 결국 매각소위가 한화컨소시움의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에 관한 결론을 낼 시점이 다가왔다. 5월말인가 6월 초인가 하는 시점에 소위 위원들이 한 데 모였다. 결국 그간의 심의한 내용을 기초로 의견을 형성할 시점이었다. 나를 포함한 3인의 위원이 한화컨소시움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반대하기로 하였고 나머지 한 위원은 다른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찬성입장을 표명했다. 이제 남은 것은 매각소위의 심의결과를 보고서에 담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본 회의에 회부하는 일 뿐이었다.

결론을 왜곡한 사무국의 심사보고서

매각소위가 다수결로 반대의견을 형성한 후 이러한 사실을 사무국에 알리고 관련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하였다. 예상외로 시일이 많이 소요되었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본 회의가 2002년 6월 19일로 잡혔으며 그 바로 전 날인 6월 18일 매각소위의 일정이 잡혔다. 당연히 미리 보고서 초안이 마련되어 매각소위 위원들에게 배포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6월 18일 오전 7시 매각소위 위원들이 모인 현장에서 비로소 보고서 초안이 배포되었다. 그런데 매각소위 위원들은 사무국이 작성한 보고서내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무국의 보고서는 매각소위 위원들이 제기한 문제점들을 나열한 후 이러한 문제점들이 있기는 하지만 최근 국내외 경제여건을 고려할 때 공적자금의 조속한 회수 및 국가 신인도 제고, 매각지연시 임직원의 도덕적 해이 발생 우려, 선진경영시스템 도입의 시급성 등을 고려하여 공적자금관리위원회에서 한화컨소시움에 대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여부를 심의, 의결함이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하는 중립적인 의견을 담고 있었다. 더군다나 매각소위에서는 한 번도 논의된 적도 없었던 각종 보완장치, 예를 들면, 인수후 일정기간의 자금지원 제한, 예보의 이사 임명권 보유, 인수후 일정시점까지 현행 법령상 보험자의 주요 출자자 요건 충족 등이 제시되었다. 반대의견을 형성한 마당에 이런 보완장치는 논의된 적도 없었으므로 사무국의 보고서는 완전히 사무국의 독자적인 작품에 불과했다.

심사는 위원들이 했지만 심사결과보고서 작성권한은 사무국에 있다?

시간은 촉박했다. 사무국이 일부러 공자위 본회의 하루 전에 매각소위 날짜를 잡은 것은 아닌가 생각되었다. 마침 그 날 6월 18일은 월드컵 본선 대 이태리전이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사무국의 황당한 보고서를 앞에 둔 매각소위 위원들 사이에 이대로는 제출할 수 없다는 의견이 팽배했고 사무국장은 내일 어쨌든 결론을 내야 한다고 밀어 붙였다. 다른 대안이 없었다. 논의 결과 내가 그간의 심의경과를 종합해서 보고서를 작성한 후 위원들의 회람을 거쳐 다음날 열리는 공자위 본회의에 제출하기로 결정되었다. 나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사무국이 못 마땅했으나 사무실에 돌아와 급히 사무국의 초안을 기초로 위원들의 합의내용을 그대로 담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내가 작성한 보고서는 한화컨소시움의 인수자로서의 자격과 제시한 가격에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지를 조목 조목 지적한 후 매각소위 위원 4인 중 3인이 한화컨소시움의 인수자격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으며 다만 최종 판단권한은 공자위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런데 이 보고서는 끝내 그 다음 날 열리는 공자위 본회의에 전달되지 못했다. 그 대신 이 보고서와 사무국이 작성한 보고서를 “종합”한 새로운 보고서가 전달되었다. 나는 심사보고서의 작성권한이 어디까지나 위원들에게 있으므로 위원들이 작성한 보고서가 본회의에 전달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왜곡된 보고서가 제출되면 허위공문서 작성으로 보아 간과하지 않겠다고까지 하였으나 사무국은 요지부동이었다. 지난 가을 국회의 국정감사장에서 나와 당시 공자위 사무국장이 이 문제에 관하여 다시 증언을 하는 기회가 있었다. 국장은 그 때도 여전히 보고서의 작성권한이 사무국에 있다고 우겼다. 심사는 위원이 하지만 심사보고서는 사무국이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경부의 국장이라는 사람이 위원회와 사무국과의 관계를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그런 것인지 아직도 의문이다.

그 후 공자위에서의 심의과정

애매모호한 결론을 담은 보고서는 정부쪽 위원들이 매각소위의 결정을 번복하자고 주장하는 핑계거리가 되었다. 결국 공자위 본회의에서도 한 바탕 난리와 홍역을 치룬 가운데 정부측 위원들의 밀어붙이기와 민간위원 1명의 가세로 한화컨소시움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건은 그대로 통과되었다. 금감위가 끝까지 버티다가 결국은 한화컨소시움의 자격에 문제가 없다는 보고서를 제출함으로써 총대를 메었던 것도 한 요소가 되었다. 그 후 공자위 사무국은 왜곡된 보고서가 제출되었던 것을 껄끄럽게 생각했는지 공자위 본회의에서 안건이 통과된 이후에도 보고서를 수정해서 사인을 받으려 갖은 애를 썼다. 보고서를 통과한 후에 보고서를 수정하다니 참으로 코메디나 다름이 없었다.

결국 이렇게 되었다

한화컨소시움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정건은 매각소위의 분명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자위에서 번복된 유일한 사례가 되었다. 매각소위 위원들은 소신에 따라 반대를 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나마 당초의 가격을 대폭 상향조정했다는데 위안을 삼을 수 있을 것이다. 한화는 우여곡절 끝에 꿈에 그리던 대생인수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정부는 다소간의 잡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대생매각과 관련한 씁쓸한 기억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만약 공자위 사무국이 재경부 산하가 아니라 다른 중립적 부처의 소관이었다면… 나를 비롯한 매각소위 위원들이 단지 위원회 내에서 반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대외적으로 문제점을 폭로했다면…. 정형근 의원이 대생인수관련 한화의 로비의혹을 도청자료를 근거로 폭로했을 때 후속적인 조사가 있었다면… 과연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이제 2년 반이 흐른 이 시점에서 대검 중수부가 과거의 일을 들추면서 수사를 한다고 한다. 아마도 진실이 모두 밝혀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몇 명이 처벌되고마는 선에서 마무리될 것이고 한화는 여전히 대한생명의 대주주로 남을 것이다. 재경부는 여전히 공적자금의 투입과 회수에 있어서 거의 견제 받지 않는 권한을 행사할 것이다. 대한생명 매각건으로 수십억원의 수수료를 챙긴 주간사는 여전히 잘 굴러갈 것이고 대생의 매각과 관련한 문제점을 보고도 못 본채 하거나 적극적으로 도운 전문가들 문제를 알고도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자들은 (나를 포함해서) 여전히 전문가로 대우를 받을 것이다. 결국 불쌍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고 막대한 공적자금을 부담해야 하는 국민들 뿐이다.

재경부의 근친상간이 사태발생의 결정적 원인

내가 아는 한 금융인은 재경부출신들이 금융감독당국은 물론 각종 금융관련 단체들의 장을 독식하고 있는 현상을 “재경부의 근친상간”이라고 표현하곤 했다. 기능 분화를 넘어서서 상호 견제역할을 해야 할 재경부와 금융감독당국, 각종 산하단체 및 금융기관들의 요직을 재경부출신들이 독식하면서 상호 견제와 감시, 감독과 피감독의 관계가 무너져 버렸다는 것이다. 재경부가 경기활성화를 위해 신용카드 사용을 활성화하고자 나서면 카드사의 건전성확보를 위해서 금융감독당국이 나서서 말려야 한다. 그러나 재경부출신이 금융감독당국의 장을 맡은 이상 이런 견제작용이 잘 안된다는 것이다.

대한생명의 특혜, 부실매각이 있게 된 결정적 원인도 바로 재경부의 근친상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예금보험공사, 금융감독위원회,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중 어느 한 곳이라도 재경부의 입김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이었다면 대생의 특혜, 부실매각은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예금보험공사의 사장도 금융감독위원회의 위원장도 모두 재정경제부출신의 소위 모피아 (재경부의 영문명칭인 MOFE와 마피아의 합성어) 였다. 금융감독위원회는 한화의 분식회계나 부실금융기관 대주주 전력이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는 의견을 결국 공자위 회의 직전에 제출하여 공자위 정부측 위원들이 매각소위의 반대를 뒤집을 수 있는 빌미를 마련해 주었다. 예금보험공사는 전체 매각절차를 진행하면서 왜곡된 보고서로 공적자금 1조 5천억원 투입의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재경부를 견제하는 사명을 띠고 만들어진 공적자금관리위원회도 재경부의 영향력하에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재경부가 일백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을 조성하고 투입한 후 회수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대표들로부터 충분한 감시를 받지 아니하면서 실적위주로 흐르거나 특혜나 비리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국회에서 만든 특별법에 근거하여 설치된 기관이다. 그러나 이 공적자금관리위위원회도 직제상 재경부장관 산하에 설치되어 있으며 재경부장관이 공동위원장이며 더 중요한 것은 실제 실무작업을 담당하는 사무국이 재경부산하의 재경부관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공자위 사무국의 보고서 왜곡, 정부측 위원들의 밀어붙이기가 없었더라면 대생의 특혜, 부실매각은 없었다.

현 시스템 하에서는 진상규명도 요원

더 큰 문제는 모피아의 활약이 대생의 진상규명도 집요하게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감사원의 수장은 바로 대생의 매각당시 재정경제부의 장관을 지내면서 조속한 매각을 주장했던 분이다. 카드국감시나 공적자금특별감사시 재경부에게 면죄부를 주었던 현재의 감사원이 대생의 매각에 관해서도 (예를 들어 어떻게 해서 9천억원가까운 순익을 낼 회사에 1조 5천억원이나 공적자금을 추가투입할 수 있었는지에 관해) 철저히 감사를 할 것이라고는 기대되지 않는다. 국회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지난 국정감사장에서 대생의 부실매각과 관련한 증언을 했을 때 현 집권당의 재경위 위원들은 그토록 열심히 내 증언을 평가절하하려 노력했는데 이들도 재경부 장관출신을 비롯한 모피아들이었다. 현재 대생의 매각과 관련한 한화그룹의 로비설에 대해서 대검이 조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관련자들이 입을 열지 않는 이상 로비의 전모는 밝혀지기 어려울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정말 간절히 부탁하고 싶다. 사안의 전모를 가장 잘 알고 있을 전윤철 현 감사원장, 이근영 전 금감위장이 국민을 위해 사실의 전모를 밝혔으면 한다. 그리고 당시 이 사안에 관련했던 많은 지식인들과 전문가들도 진실을 밝혔으면 한다. 설령 대생을 한화에 매각하는 것이 옳다는 소신에 따라 행동했다 하더라도 법에 정해진 감시와 견제기능을 무시하고 미리 정해진 방침을 밀어붙였다면 이는 큰 잘못이다. 이런 독단적 시스템을 그대로 둔 다면 우리에게 또 다시 IMF위기, 카드위기와 같은 위기가 닥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 김주영 (변호사, 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매각심사소위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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