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김치는 채소를 물에 담근다는 뜻의 ‘침채’(沈菜)가, 김장은 침채를 저장한다는 뜻의 ‘침장’(沈藏)이 변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김치의 역사는 삼국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김장 역시 늦어도 고려 후기부터는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요즘처럼 배추를 주재료로, 고춧가루를 보조 재료로 한 김치의 역사는 200년 남짓밖에 안 된다. 배추는 백채(白菜)가 변한 말로, 20세기 전반기까지도 신문·잡지 등에서는 ‘배채’로 표기했다. 우리 선조들이 배추를 김치의 주재료로 삼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말 속이 꽉 찬 결구배추 종자가 중국 산둥성에서 전래된 이후다. 왕궁에서도 김장을 했는데, 순종이 서거하여 궁중 상주인구가 대폭 줄어든 뒤인 1927년 초겨울 창덕궁에 김장용으로 들어간 배추가 1만 포기쯤 되었으니, 19세기에는 수만 포기씩 했을 것이다. 서울의 경우 왕궁에서는 현재의 창신동 일대에서 재배된 방아다리 배추를, 양반가에서는 동대문 부근에서 재배된 훈련원 배추를, 서민 가정에서는 왕십리 배추를 사용했다. 15세기에 발간된 <간이구급방>에 ‘고초(椒)’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을 근거로 오랜 옛날부터 우리나라에 고추가 자생했다고 보는 설이 있는데, 이 고초가 요즘 고추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이수광의 <지봉유설>(1613)에 ‘왜개자’(倭芥子)로 기록된 것을 직계 조상으로 보는 편이 나을 듯하다. 아메리카대륙에 자생하던 아히(aji)가 유럽과 일본을 거쳐 조선에 전래되었고, 이것이 다른 작물한테서 고초라는 이름을 빼앗았을 가능성이 크다. 19세기 서울 근교의 고추 재배지로는 현재의 연희동 일대가 유명했다. 고추는 말린 뒤 가루로 빻으면 오래 보관할 수 있었기에 상품화의 속도가 무척 빨랐다. 게다가 어떤 연유에서인지 한국인들 대다수가 고춧가루 중독 상태에 빠졌다. “가정에서 조석으로 한끼도 빼지 않고 고춧가루를 쓰는 나라는 우리 조선뿐일 것입니다. 하루 세끼의 반찬이 모두 고추로 양념되어 음식 본맛까지도 모두 고추맛으로 변해집니다.”(정구충, <조선중앙일보> 1933년 6월24일치) 맵다의 부사형이 ‘매우’다. 현대 한국인들에게 ‘매우 심한 언행’이 다반사인 것도 고춧가루 중독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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