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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이란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됐음”을 뜻한다. 불혹의 나이라는 마흔이 넘어야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도록 우리 헌법이 규정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법하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 40대 지도자의 이미지는 불혹과 거리가 있다. 격변까지는 아니더라도 변화와 개혁이라는 과제가 그의 어깨에 걸린다. 1960년 미국 역사상 최연소인 43살의 나이로 대통령에 당선된 존 케네디가 그랬다. 80~90년대 미국 민주당의 변신을 주도한 빌 클린턴도 46살 때 백악관에 진입했다.
냉전 종식 이후 유럽에서는 40대 지도자의 등장이 상례가 됐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새 노동당’을 내세우며 41살이던 94년 당수가 된 뒤 44살에 총리에 올라 3선을 기록했다. 지난해 스페인 총리에 오른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도 이제 45살이다. ‘조용한 사회주의자’로 불리는 그가 사회노동당 당수가 된 것은 40살이던 2000년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48살 때인 2000년 현직에 올라 지난해 재선됐다. 얼마 전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 앙겔라 메르켈이 기민당 당수가 된 것도 46살이던 2000년이다. 39살의 나이로 최근 영국 보수당 당수 자리를 차지한 데이비드 캐머런은 2009년 총선에서 이기면 43살에 총리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40대 기수론의 원조는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두 사람은 군사독재 시절인 71년 대선을 앞두고 신민당 후보로 경합을 벌여, 민주화를 염원하는 국민의 눈을 즐겁게 했다.
최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일부에서 ‘40대 대표론’이 솔솔 제기되고 있다. 변화와 개혁의 필요성으로 볼 때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참신한 비전과 추진력이 있는 40대 대표라면 적극 환영할 일이다. 불혹의 마음까지 갖추고 있으면 금상첨화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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